초등학교 때 교과서에 실린 거북이와 토끼의 경주 이야기를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거북이의 성실성을 본받고 토끼의 자만심을 경계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는 이야기지요. 예전에는 이 이야기를 조금 변형시켜서 수업 시간에 종종 활용하곤 했습니다. 거북이가 잠자는 토끼를 깨워서 함께 손잡고 나란히 결승선까지 가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게 제가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곤 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습니다. 요즘 토끼들은 경기 도중에 낮잠을 잘 만큼 어리석거나 한가하지 않거든요.
이제 대부분의 학교에서 중간고사가 끝났을 겁니다. 시험이 끝나고 나면 아이들이 교무실에 몰려와서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느니, 정답이 이상하다느니 하며 한바탕 시끌벅적 야단입니다. 내게도 한 무리의 아이들이 몰려와서 이것저것 묻거나 따지다가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돌아갔던 아이 한 명이 문자를 보내오더군요. 그것도 무려 스무 통이 넘는 문자를 계속 날리는 겁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정도가 심해지면서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문자의 요지는, 서술형 문제에서 아쉽게 틀렸는데 부분 점수라도 달라는 거였습니다. 자신은 학원에도 안 다니고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하는데, 내가 수업시간에 정확히 알려주지 않아 해당 구절에 필기가 안 돼 있다며 자기 교과서를 펼쳐 보이기까지 했던 친구입니다. 분명히 가르쳐 준 내용이고,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문제였으나 본인은 극구 억울하다며 집에 가자마자 문자를 날리기 시작했던 거지요. 쓸쓸했습니다. 그 아이는 누가 봐도 착실한 모범생이고, 나 역시 마음 속으로 귀여워하는 아이입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행동이 지나치다 싶어 계속 이러는 건 문자폭력이라며 그만 하라는 문자를 보냈더니,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보낼 테니 그래도 봐 주세요.’ 하는 답신을 보내왔습니다. “어이쿠” 하며 그저 내 머리를 치고 말았지요.
시험 점수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게 꼭 아이들 탓만은 아닐 겁니다. 어떤 아이가 “시험문제가 뭐 그래요? 시험지를 말아먹고 싶었어요”라고 당돌하게 내뱉을 때도 불쾌함에 앞서 측은한 마음이 일더군요. 경쟁보다는 협력이 더욱 소중한 가치라는 걸 아이들이라고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너무 일찍 현실의 냉혹함을 눈치챈 아이들인지라 그런 건 공자님 말씀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거북이가 아무리 열심히 경주에 임한다고 해도 결코 토끼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아이들은 이미 몸으로 깨닫고 있습니다.
토끼들의 눈은 빨갛습니다. 아비 토끼들은 낮잠은커녕 밤잠을 줄여가며 일을 해야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을 수밖에 없지요. 어린 토끼들은 어떤가요? 밤늦게까지 학원에 다니느라 잠잘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어린 토끼들의 눈도 빨개지는 건 당연하겠지요. <빨간 눈의 토끼>라는 제목으로 현대판 우화를 다시 써야 할 판입니다.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초6, 중3, 고1 아이들은 ‘학업성취도평가’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 동시에 실시하는 일제고사를 치렀습니다. 네모난 교실에서 똑같은 문제를 푸느라 빨간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을 어린 토끼들을 떠올리니 애잔한 마음이 밀려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