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테크놀로지] 내가 아직 풍뎅이로 보이니?
美, 정찰용 '사이보그 곤충' 무선 조종 성공
풍뎅이 등에 칩·전파수신장치·카메라 장착
인간의 무선신호 따라 원하는 곳으로 이동
이영완 기자 ywlee@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화창한 봄날 풍뎅이 한 마리가 창가에 앉았다. 꽃밭을 찾다가 길을 잃은 게 아니다. 가만히 보면 등에 초소형 카메라가 장착돼 있다. SF영화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미 국방부의 지원을 받은 연구진이 칩과 전극이 부착된 풍뎅이를 무선으로 조종하는 데 성공했다. 적진을 정찰하고 숨겨진 폭탄을 찾는 임무를 띤 사이보그(cyborg) 풍뎅이다.
◆뇌와 근육에 전기자극 줘 비행 조종
지난달 말 이탈리아에서 열린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 초소형기계전자시스템(MEMS) 학회에서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미셀 마하르비즈(Maharbiz) 박사팀은 모형비행기를 조종하듯 리모컨으로 풍뎅이를 원하는 방향으로 날아가게 하는 시범을 보였다. 곤충에 칩과 전극을 심고 전기신호로 조종하는 연구는 여러 군데서 진행됐지만 무선으로 실제 비행 조종에 성공한 것은 처음이다.
풍뎅이의 등에는 전기신호를 처리하는 컴퓨터 칩과 전파수신장치, 배터리, 전극들이 있다. 6개의 전극은 풍뎅이의 뇌에서 시각신호를 처리하는 부위와 좌우 비행 근육에 각각 꽂혀 있다. 비행조종은 간단하다. 연구진이 노트북으로 풍뎅이의 무선수신장치로 신호를 보내면 칩이 이를 해석해 그에 맞는 전압을 전극에 걸어준다. 그러면 풍뎅이는 날개를 움직여 지시한 방향대로 날아간다. 이를 테면 (-)전압을 뇌에 걸어주면 풍뎅이는 날개를 움직여 이륙한다. (+)전압을 걸면 날개를 내리고 착륙한다. (-)(+)전압을 번갈아 주는 방식으로 고도 조정이 가능하다.
방향전환은 두 가지 방법으로 가능하다. 첫 번째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왼쪽 비행 근육에 전기 자극을 주면 왼쪽으로, 오른쪽 근육을 자극하면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두 번째는 빛 자극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풍뎅이 눈앞에 LED(발광다이오드) 두 개를 단다. 왼쪽 LED가 점등되면 풍뎅이는 오른쪽으로, 오른쪽이 점등되면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LED 대신 바로 뇌의 시각신호 처리 부위에 전극을 심어 전기신호로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밤에는 사이보그 나방이 정찰
과학자들은 동물을 모방한 로봇을 오랫동안 개발해왔지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이보그 동물은 그 대안으로 나왔다. 힘들여 로봇을 만들기보다는 동물에 전극을 꽂아 로봇처럼 조종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1950년대 예일대 연구진이 황소의 뇌에 전극을 심어 행동을 조종하는 데 성공한 이후 비둘기, 쥐, 상어 등 다양한 동물에서 같은 실험이 진행됐다. 하지만 이들은 몸집이 커서 스파이로 쓰기 어려웠다. 곤충은 크기도 작고 주변에 흔히 날아다니기 때문에 주목을 받지 않고 어디든 침투할 수 있다. 사이보그 곤충의 군사적 가치에 주목한 미 국방부는 2000년대 들어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통해 다양한 사이보그 곤충 개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낮에 풍뎅이가 있다면 밤에는 사이보그 나방이 있다. 지난해 미 코넬대의 데이비드 스턴(Stern) 박사팀은 박각시나방에 전극을 심어 조종하는 데 성공했다. 아직까지는 나방에 전선을 단 유선조종형태지만 곧 풍뎅이처럼 무선조종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나방은 후각이 뛰어나 폭발물을 찾는 데 적합하다.
이에 비해 풍뎅이는 나방보다 몸집이 크고 힘도 세 무거운 카메라나 센서를 장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전기신호를 짧게 줘도 조종이 가능해 배터리를 오래 쓸 수도 있다. 나방을 조종하려면 전기신호를 오래 줘야 한다. 보이는 곳을 찾을 땐 풍뎅이를, 보이지 않는 냄새를 추적하거나 밤에 적진을 정찰할 때는 나방이 이용될 수 있다.
곤충을 로봇의 한 부품으로 이용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애리조나대의 찰스 히긴스(Higgins) 박사팀은 바퀴가 달린 로봇의 시각기능을 나방에 맡기는 연구를 하고 있다. 즉 나방의 뇌에서 시각신호를 처리하는 부분에 전극을 심고 방향전환에 따라 달라지는 전기신호를 받아 로봇이 방향을 파악하는 것이다. 나방의 뇌가 로봇의 시각센서가 되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