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호랑이
세계일보 원문 기사전송 2009-12-3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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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담지국(虎談之國). 중국 남북조 시대 후한서를 쓴 범엽(范曄·398∼455년)은 동이(東夷)의 나라를 이렇게 불렀다. 그만큼 우리나라에는 호랑이 이야기가 많았다. 호랑이는 단군신화에 등장한다. 호랑이와 곰은 신웅(神雄)에게 사람이 되기를 빌었다. 쑥 한줌, 마늘 20개로 백일을 견디지 못한 호랑이는 동굴을 뛰쳐나가고, 끝까지 견딘 곰은 고운 여자로 변해 하늘의 아들 환웅(桓雄)의 아내가 된다. 단군왕검은 그들 사이에서 태어났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후 호랑이는 벗과 같은 동물로, 수호신으로 등장한다. 호랑이와 떡장수 할머니 이야기.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라며 할머니를 어르는 호랑이는 무서운 백수의 제왕 모습이 아니다. 그런 호랑이는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가 됐다. 호랑이 발톱으로 만든 노리개, 호랑이 다리처럼 생긴 소반 다리 호족반(虎足盤), 어린아이를 병마로부터 지켜주는 호랑이 무늬의 머리쓰개. 우리 생활 곳곳에 배어 있는 호랑이는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호신이었다. 수도를 지키는 정예부대를 맹호부대라 이름한 것도 호신의 의미를 담는다.
흰 호랑이는 사후세계를 지켰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사신도(四神圖). 동서남북 네 방위를 지키는 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 가운데 흰 호랑이는 서쪽을 지켰다. 왜 서쪽을 지켰을까. 사신은 풍수지리설과 신선사상의 소산이다. 사신도를 그리던 때 이미 널리 퍼진 불교에서는 부처의 세계를 일러 서방정토(西方淨土)라고 했다. 부처의 세계에 방향이 있을까마는 그 세계를 서쪽이라고 가리키고 있으니 흰 호랑이는 어쩌면 가장 중한 역할을 맡고 있었는지 모른다. 호랑이에 대한 믿음은 그만큼 강했다.
경인(庚寅)년 호랑이 해가 밝았다. 60년 만에 돌아오는 흰 호랑이 해란다. 역학에서 경(庚)은 흰색과 서쪽, 쇠(金)를 뜻하니 흰 호랑이 해로 해석된다. 호랑이 해는 설부터 시작되지만 사람들 마음에 호랑이 해는 이미 열린 듯하다. 유난히 기가 센 흰 호랑이. 새해에는 훌륭한 인물이 많이 태어난다고 한다. 흰 호랑이 해를 맞아 우리 모두 ‘어흥’ 하며 새 날을 열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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