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 우리 곤충… 영리한 기술로 먹이 잡는 '호랑거미'
| 기사입력 2010-12-17 16:21
먹이를 포획한 호랑거미.
배에 호랑이 무늬…냇가·논 주변 서식
거미줄 중심에 흰띠 만들어 곤충 유혹
옛 어른들은 독사에게 물렸을 때 거미를 약으로 썼다고 한다. 몸에 부스럼이 나거나 임파선이 붓고 염증이 생겼을 경우에도 거미는 치료약 구실을 톡톡히 했다.
'서경잡기'란 옛 책에 따르면, 거미는 길흉을 점치는 근거가 되는 존재였다. 집 안에 나타나는 시기에 따라 좋은 운, 나쁜 운의 징조라고 믿었다. 거미가 아침에 내려오면 기쁜 일이, 저녁에 내려오면 나쁜 일이 생긴다고 여겼던 것이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오고, 저녁에 울면 반갑지 않은 손님이 온다'는 속담과 뜻이 비슷하다. 거미를 징그럽게 생각하는 요즘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물거미와 무당거미에 이어 오늘은 호랑거미를 소개한다. 이 거미 역시 먹이사슬로 평형을 유지하며 벼와 같은 논 작물에 발생하는 해로운 곤충을 잡아먹는 이로운 벌레(익충)이다. 호랑거미란 이름은 배에 호랑이 가죽과 비슷한 무늬가 있어 붙여졌다. 그물은 세로의 원형 형태로 짓는데, 주로 그물 중심에 머무르면서 곤충 따위를 잡아먹는다. 서식지는 냇가, 호수, 논 주변이며, 암컷 거미의 그물은 ∨, ∧, X자 형태의 지그재그로 된 흰색 띠를 가진다.
거미들의 뇌는 쌀 알보다 작지만 매우 영리하다. 그래서 먹이를 잡는데 특별한 기술을 이용한다. 호랑거미는 그물 중앙에 흰띠를 쳐 놓는데, 여기엔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다. 몇몇 곤충들은 꽃 속의 꽃가루나 꿀을 먹기 위해 꽃을 찾는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호랑거미는 그물 가운데 흰띠를 만들어 곤충을 유혹한다. 다시 말해 사람의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곤충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자외선 영역에서는 흰띠가 바로 꽃의 꿀샘처럼 보이게 하여, 먹잇감인 곤충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실제로 호랑거미의 그물에 걸리는 곤충을 조사해 보면, 주로 꽃에서 꽃가루나 꿀을 따 가는 꿀벌이나 파리류, 나비류가 대부분이다.
거미 학자들에 따르면, 호랑거미는 다른 종류의 거미에 비해 50% 이상 더 많은 먹이를 포획할 수 있다고 하니 놀라울 수밖에 없다. 호랑거미에게 있어 흰띠는 먹잇감을 잡는 일을 포함해 일석삼조의 역할을 한다. 흰띠로 거미 그물을 단단하게 고정하는 것은 물론, 천적들로부터 자신의 몸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영보 박사(농촌진흥청 곤충산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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