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에게 배울 두 가지
2007년 12월 02일 (일) 20:47 중앙일보
[중앙일보 정선구] 벌써 12월. 길운(吉運)이 겹겹이 쌓였다는 황금돼지해도 끝물이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주변에 “참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김이 숭얼숭얼 오르는 쌀밥이야 못 먹었겠나마는 삼합에 햇 매생이국 잘하는 남도 맛집을 찾을 여유는 없었나 보다. 하긴 이게 어디 한두 해 일인가 싶다가도 내년엔 좀 나아질까 은근히 기대하는 게 우리네 심리다.
내년은 쥐띠해(戊子年)다. 12간지 풀이에 보면 쥐띠들에겐 위험 감지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아마 쥐의 본능이 그래서인가 보다. 쥐띠들은 무슨 일을 행할 때는 늘 뒷문부터 점검해 놓고 시작한다. 위험이 적은 길을 택하다 보니 자기보호를 최우선 순위에 놓는다. 적응 능력이 뛰어난 실속파다. 단점이 있다면 구두쇠이자 욕심꾸러기다. 이만하면 됐다 싶지만 좀체 만족할 줄 모른다.
쥐띠의 좋은 특징들이 내년에 널린다면 우리는 좀 더 나은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을 듯 싶다. 그런데 어디 말처럼 쉬운가. 앞날을 점치는 일이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이승일 한국은행 부총재가 전하는 우스갯소리를 들어 보자. 하늘나라의 아인슈타인은 천국에 오는 사람들에게 일감을 하나씩 줬다. 먼저 지능지수(IQ) 300인 사람.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원리를 계승하라”고 주문했다. IQ 200인 사람에겐 “마찰 없는 구조조정 묘안을 짜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IQ 20인 사람이 천국에 오자 아인슈타인은 굉장히 고민했다. 그러고는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내린 지시. “6개월 뒤의 환율을 맞혀 보라.”
경기 예측이 얼마나 어려운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유머다. 그럼에도 요즘 경고음 한 가지는 뚜렷하게 울리고 있다. 미국 서민 주택담보대출 파동에서 비롯된 세계 경제 침체 우려다. “미국 주택경기가 더 침체될 수 있다”(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제도이사회 의장), “대출 파동은 내년에 최악이 될 것이다”(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 월스트리트 저널)…. 온통 먹구름 전망들이다. 7월에만 해도 세계는 ‘사상 최대 초경제 호황(the greatest economic boom ever)’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고 했다(미 경제전문지 포춘). 그러나 이젠 ‘위기일발(A close call)’의 상황(11월 19일 공개된 미 연방제도이사회 의사록)이 돼 버렸다.
우리 정부 고위 관리들의 말도 심상치 않다. 김용덕 금융감독위원장은 최근 “미국 대출 부실이 세계 경제에 미칠 파급 효과는 예상보다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리의 토로는 더 섬뜩하다. “고유가, 내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 경제 거품 붕괴, 미국 경기 침체라는 삼각 파도가 닥치면 우리의 외환보유액은 방어 수단이 못 된다. 98년 외환위기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극복 방법은 딱 하나뿐, 국제사회에 한국을 믿게 해야 한다. 외환위기가 닥쳐도 돈 안 떼먹을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우리에게 내년은 더 없이 중차대한 해다. 새 정부가 들어서는 해이자, 세계 경제불안이 위협하는 해다. 이럴 때 꼭 필요한 것이 쥐띠의 강점(위험 감지 능력)을 취하고 단점(과욕)을 버리는 일이다. 위험에 대비하지 못하고, 샴페인이나 터뜨렸다가는 10년 전 제일은행 직원들이 찍었다는 ‘눈물의 비디오’ 속편을 만들지도 모른다. 시인 함민복은 『긍정적인 밥』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시집이 한 권 팔리면/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박리다 싶다가도/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쥐띠해에 명심할 두 가지, 늘 위험에 대비하고(居安思危) 제 분수를 지킨다면(安分知足) 우리의 내년은 안(安)하고, 족(足)하지 않겠는가.
정선구 경제부문 차장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center/journalist.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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