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미국 뉴저지 병원에서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던 캐런 퀸란의 부모가 의사에게 딸의 호흡기를 떼달라고 요청했다. 회생 가망이 없는 딸이 품위와 존엄 속에 죽을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였다. 의사가 호흡기 제거를 거부하자 퀸란의 부모는 법원으로부터 허가 판결을 받아냈다. 생명 연장을 위한 치료를 포기하는 ‘소극적 안락사’를 처음 인정한 판결이었다. 퀸란은 호흡기를 떼고도 9년을 더 살다 갔다.
▶미국 병원과 법원에선 생명연장장치 제거에 대한 결정이 하루 1000건씩 이뤄진다고 한다. 미국 오리건주와 네덜란드는 의사의 극약 처방을 받아 생을 마감하는 ‘적극적 안락사’까지 인정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죽음의 약을 주지 않는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무색한 세상이다. 소극적 안락사가 ‘죽게 방치함’(letting die)이라면 적극적 안락사는 ‘죽임’(killing)이다.
▶15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살아온 테리 시아보가 법원 명령으로 영양공급관이 제거된 지 13일 만에 숨졌다. 튜브 제거를 둘러싸고 남편과 부모가 대립하면서 안락사 논쟁을 새롭게 불러일으켰던 그녀는 끈 떨어진 연처럼 저세상으로 날아갔다. 70% 넘게 소극적 안락사와 ‘죽을 권리’를 지지하는 미국민들도 그녀의 죽음에서 삶의 덧없음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우리 사회에 잠복해 있던 안락사 논쟁은 지난해 대법 확정판결을 받은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터져나왔다. 환자 아내의 요구로 인공호흡기를 떼준 의사에게 살인방조죄로 실형이 선고된 사건이다. 환자의 아내는 살인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환자가 소생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지만 의료계는 “현실과 관례를 무시한 판결”이라고 반발했다. 7년 법정공방 와중에 병원마다 가망 없는 환자도 퇴원시키기를 거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어제 나온 여론조사를 보니 소극적 안락사 찬성이 69%에 이르렀다. 의식불명이 될 경우에 대비해 환자가 미리 치료거부 의사를 밝혀두면 그 뜻을 존중해주는 ‘존엄사’도 71%나 찬성했다. 적극적 안락사도 56%가 지지했다. 수명은 계속 늘어나겠지만 이는 건강한 삶보다 죽음의 과정을 연장하는 것일 수 있다. 시인 이병금은 대소변 수발을 받는 아흔네살 할머니의 지린내 밴 방에서 생각한다. ‘사치스런 소망 하나 품어본다/ 날마다 나 스스로를 살아가자고/ 나 혼자만의 손과 발로 걸어서 마지막 날에/ 축복처럼 당도하고 싶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