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자이로 드롭 [중앙일보] ‘2초의 쾌감’ 굵고 짧은 게 통했다
관련핫이슈[section] week＆지난 week＆ 기사 보기
롯데월드에 가면 자이로 드롭(Gyro Drop)이란 놀이기구가 있습니다. 40대 이상에겐 낯선 이름일지 모르겠지만 30대 이하에겐 진즉에 명소가 된 곳입니다. 한때 대학생 사이에선 “롯데월드 가자”보다 “자이로 드롭 타러 가자”란 말이 더 일반화된 말이었으니까요.
자이로 드롭은 매니어층을 구축한 한국 최초의 놀이기구입니다. 다른 놀이기구, 이를테면 청룡열차·범퍼카·회전목마 따위는 특정되지 않은 일반명사입니다. 놀이공원(요즘 말로 테마파크) 어디에서도 탈 수 있으니까요. 아니, 이런 놀이기구를 들여놔야 비로소 놀이공원이 될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자이로 드롭은 애초부터 자이로 드롭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청룡열차 따위로 뭉뚱그려지지 않고 고유명사로 불린 최초의 놀이기구였던 셈이지요.
자이로 드롭은 1998년 4월 11일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말까지 1470만 명이 넘는 사람이 탔습니다. 지금도 주말이면 자이로 드롭을 타려는 줄이 롯데월드를 빙빙 돌아가며 서 있습니다. 아침마다 석촌호수 조깅을 마치고 자이로 드롭을 탄다는 30대 여성도 있다 하고, 연속 30회 탑승 기록을 세운 여학생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이로 드롭의 의의는 따로 있습니다. 자이로 드롭은 놀이기구에 관한 통념과 상식을 한 방에 깨뜨린, 시대의 이단아라는 점이죠. 여태의 놀이기구는 대체로 얼마나 오래 타는지, 얼마나 규모가 길고 웅장한지 하는 것으로 평가받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자이로 드롭은 이 모든 것을 무시합니다. 넓은 공간도 필요없고, 운행시간도 단 몇 초 만에 상황종료입니다. 70m 상공까지 죽 올라갔다 허공에서 3초간 정지합니다(이때가 가장 숨막히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꺅! 자이로 드롭은 이것저것 보여주지도 않고, 이러구러 설명하지 않습니다. 간단하고 명쾌하게, 2초 만에 한 방에 추락하고 끝내버립니다.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요즘의 세태가 자이로 드롭에서 읽힙니다.
하나 더. 롯데월드가 자이로 드롭을 들여왔던 시점이 외환위기가 막 터진 다음이었습니다. 국내 놀이공원의 매출이 20% 가까이 떨어졌던 그때, 롯데월드만 20% 이상의 매출 신장을 보였습니다. 물론 이 놀이기구 덕분이죠.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 만에 경기가 다시 곤두박질치고 있군요. 이 시점에 자이로 드롭의 성공 신화는 이렇게 말합니다. 추락할 때 높아지는 매출도 있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