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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의 '五賊' 43년 만에 사실상 무죄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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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준 기자
기사100자평(21)
日文 크게 작게요즘싸이 공감조선블로그MSN 메신저입력 : 2013.01.05 03:04
'오적 필화 사건' 법정 최저형인 징역 1개월 선고유예 판결
"당시 일부 부패한 권력층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
재심요건 안돼 무죄판결 못해… 사법적인 명예회복 이뤄져
민청학련 사건 연루 혐의는 39년 만에 무죄 판결
'시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 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1970년, 잡지 사상계 5월호에 김지하(당시 29세)의 시(詩)가 실렸다. 제목은 오적(五賊). 판소리 가락 운율을 타고 굽이쳐 200자 원고지 40장을 달린 시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 다섯 도둑(오적)이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다는 내용을 담았다.
1969년부터 이어진 3선 개헌 날치기, 정인숙 여인 의문사 사건, 와우아파트 붕괴로 흉흉한 민심에 맞닥뜨린 정부 당국은 사상계 수거에 나섰지만, 그해 6월 제1 야당인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에 김지하의 시가 실리자 방향을 바꿨다. 김지하는 사상계 부완혁(1987년 작고) 대표 등 3명과 함께 구속 기소됐다. 죄명은 반공법 위반. "오적은 남한 사회의 빈부 격차를 부각해 계급의식을 고취한 용공 작품"이라는 혐의였다. 이른바 '오적 필화(筆禍) 사건'이었다.
4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통령긴급조치제1호위반 재심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시인 김지하씨가 법정을 나오며 밝은 표정으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지하씨는 “나꼼수가 세상에 유행했는데, 내가 정치 풍자하면 그렇게 저질로 안 해. 간이 떨리게 하지”라고 말했다. /채승우 기자 김지하 등 피고인들의 재판 과정에선 조선일보 선우휘 주필, 시인 박두진 등을 위시한 지식인들이 감정서와 의견서를 통해 구명에 나섰다. 김지하는 재판에서 "오적이 있으니까 오적을 썼을 뿐이다. 용공이라고 하는데 부정부패 그 자체가 이적(利敵)이 될지는 몰라도 그것을 비판하는 소리가 이적이 될 수 없다"며 당당하게 맞섰다.
피고인들은 한때 사건을 담당했던 목요상(78·전 국회의원) 판사의 결정으로 구금 100일 만에 보석으로 석방됐고, 김지하를 뺀 나머지는 선고유예(일정 기간이 지나면 선고가 무효로 되는 것)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김지하만은 이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1974년 터진 '민청학련' 사건으로 재차 수감되면서 민청학련에 대한 자금 지원, 배후 조종 혐의까지 보태져 사형선고를 받고, 나중에 무기로 감형됐다. 김지하는 10개월 만에 형집행정지로 석방됐지만, '오적'에 대한 역사적·사법적 평가는 나중으로 넘겨진 것이다.
김지하가 오적을 쓴 지 약 43년 만인 4일, 사법부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원범)는 김지하가 청구한 민청학련 재심 사건에서 민청학련 연루 혐의에 대해서는 "고문 등으로 조작된 사건"이라며 무죄를, 오적 필화 사건에 대해서는 법정 최저형인 징역 1개월에 선고유예 판결을 각각 내렸다.
오적 필화 사건은 허위 증언이나 고문(拷問) 조작 등 법적인 재심 사유가 없어서 엄밀하게는 재심이 아니었다. 이 경우엔 유·무죄는 바꿀 수 없고, 형량만 다시 판단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재판부는 "법리상 한계 때문에 무죄 판단은 할 수 없고 형량만 최소화하는 점을 양해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오적은 부패한 권력층과 이를 적발해야 할 사정 기관의 비리 등에 대한 공분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당시 재판 절차가 인권 보장과 법치주의 수호라는 사법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피고인(김지하)을 포함한 다수 지식인에게 감내할 수 없는 희생을 강요했다"고 사과했다.
형식적으로는 유죄 판결이지만, 사실상은 무죄 판결을 통해 '오적'과 김지하에 대한 사법적 명예 회복이 이뤄진 것이다. 재판부는 민청학련 사건 관련해서도 "진실로 사죄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법부가 용서를 구하기 앞서 먼저 용서한 쪽은 작년 대선에서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딸을 지지한 김지하였다.
김지하는 판결 직후 "오적 때문에 풍자시를 몇 년간 못 썼다"며 "나꼼수가 세상에 유행했는데, 내가 정치 풍자하면 그렇게 저질로 안 해. 간이 떨리게 하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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