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신약 마루타’ 실험실서 데굴데굴 굴러요”
최원형 기자
한해 800만마리 ‘실험용 쥐들’의 외침
실험 끝나면 ‘위험하다’ 척추 끊어 폐기
쥐띠해 맞아 “최소 사용” 권익보장 움직임
안녕하세요? 저는 생쥐입니다. 여러분이 집안 구석이나 동네 시궁창에서 마주쳐 기겁하곤 하는 시궁쥐와 달리, 전 투명한 유리 안에서 인간이 주는 먹이를 먹고 살아갑니다. 먹이를 찾아 헤매다 쥐약을 먹고 죽곤 하는 시궁쥐는 저를 부러워할지도 모르지만,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전 인간을 대신해 여러가지 약물주사를 맞습니다. 이번에 무슨 신약 성분 주사를 맞고나서는 창자가 끊어질 듯 아파서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연구원들이 비상한 관심을 보이며 다시 주사를 찔러 제 피를 뽑아가더군요. 인간 대신 하루 종일 담배를 피우는 친구나, 하루 종일 미로를 헤매야 하는 친구도 고통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죠. 그리고 고통 뒤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연구원이 옆 우리에 있던 친구의 몸통과 꼬리를 잡고 단번에 척추를 끊어버리는 것을 봤습니다. 연구원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실험이 끝난 쥐는 실험 약품의 위험성 때문에 죽일 수밖에 없어. 고통을 최대한 줄여주려면 이렇게 단번에 목숨을 끊어줘야 해.”
왜 우리가 이런 일들을 겪어야 하는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의학 발전을 위해 희생되는 거죠. “인간의 질병극복사에서 쥐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 왔고 암과 같은 난치병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 쥐는 인간에게 고마운 존재”(강종구 한국실험동물학회 회장)라는 칭찬도 가끔 듣지요. 실험실에서는 해마다 한차례 위령제도 지내주고요. 그러니 우리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일 밖에요.
하지만 무분별한 실험만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숙련되지 않은 연구원이 주사바늘 찌를 곳을 못 찾아서 머리와 배를 사정없이 찔러대거나, 다섯 마리만 실험하면 될 걸 열 마리씩 실험하고, 실험 목적에도 맞지 않는 불필요한 실험을 하는 일 따위는 ‘인간적으로’ 없었으면 좋겠네요. 얼핏 국립독성연구원이란 곳에서 만든 책자를 봤더니, 한 해 동안 한국에서 사용되는 실험동물이 1천만 마리가 넘고 그 가운데 80%는 우리 쥐들이랍니다. 꼭 하지 않아도 될 실험에 동원돼 마취제도 없이 고통을 겪다 죽어간 친구들도 많을 겁니다.
다행히 인간들도 조금씩 우리 처지를 생각해주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3아르’(3R)라는 동물실험 기본규칙이 한국에도 도입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세포조직으로 동물을 대체하거나 실험에 사용하는 개체를 최소한도로 줄여야 한다”(한국대체실험법학회 김대환 박사)며 우리를 생각해주는 분들도 늘고 있고요. 쥐띠해인 올해부터는 우리 실험용 쥐들도 최소한의 권익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는 건가요? 제발 도와주세요.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3아르(3R)= 가능하면 생물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세포 실험 등으로 대체하고(Replacement), 실험동물의 수와 고통을 최대한 줄이며(Reduction), 불필요한 실험이 시행되지 않도록 개선한다(Refinement)는 원칙. 1950년대 말 영국의 동물학자 윌리엄 러셀과 미생물학자 렉스 버치가 처음 주장했으며,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정책적 원칙으로 채택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원칙을 담은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1월부터 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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