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in 뉴스] 배트맨의 진짜 적은 조커가 아니었다
박쥐는 '풍력발전기'가 더 두려워
풍력발전기 옆에서 박쥐들 숨진채 발견
사체는 외상 없이 깨끗한 상태
기압 때문에 허파 팽창 '내출혈死'
이영완 기자 ywlee@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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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이 숙적 조커보다 더 강력한 적수를 만났다. 대안 에너지로 부상하고 있는 풍력발전기 아래에서 숱한 박쥐의 사체가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새들이 풍력발전기 날개에 부딪혀 죽는 일은 흔히 있어 왔다. 하지만 초음파를 쏘아 어떤 장애물도 능수능란하게 피할 수 있는 박쥐의 죽음은 의외의 일이다. 더욱이 박쥐의 사체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누가 박쥐를 죽였을까.
캐나다 캘거리대의 로버트 바클레이(Barclay) 교수와 대학원생 에린 배어발트(Baerwald)는 학교 근처 풍력발전기 아래에 숨져있는 박쥐를 수거해 사인(死因)을 추적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사체에 외상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일반적으로 풍력발전기 주변에서 발견되는 새의 사체는 토막이 나있다. 풍력발전기 날개에 몸이 잘려 죽은 것이다.
박쥐의 사인은 내출혈이었다. 해부 결과 75마리 중 69마리에서 내출혈이 발견됐다. 연구진은 '압력'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풍력발전기가 돌면 날개 끝에서 공기 압력이 갑자기 낮아진다. 박쥐와 같은 포유류의 허파는 풍선과 같다. 풍선은 바깥쪽 공기 압력이 낮아지면 크게 부풀어 오른다.
즉 박쥐는 초음파를 이용해 날개를 비켜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곳의 공기 압력이 너무 낮아 허파가 급팽창한 탓에 혈관이 터져 죽은 것이다.
이는 수압이 높은 심해에서 작업하던 잠수부가 갑자기 물 밖으로 나올 때 허파 손상을 입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반면 새는 포유류와 달리 허파가 잘 늘어나지 않아 이 같은 내출혈이 발생하지 않는다.
캐나다에는 9종의 박쥐가 사는데 풍력발전기 주변에서 사체로 발견된 3종은 모두 철새처럼 가을에 서식지를 옮기는 박쥐였다. 박쥐는 바람이 약할 때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다. 연구진은 가을에 바람이 약할 때는 발전기 가동을 중단해야 박쥐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지 8월 26일자에 발표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