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in 뉴스] 벌레와 세균의 '행복한 동거'
소나무 숲속 '한지붕 세가족' 살고 있었네
좀벌레·곰팡이·박테리아 '多重 상생관계' 밝혀져
이영완 기자 ywlee@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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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 안에‘3가구 1주택’ 소나무 껍질 안에 자리잡은 딱정벌레(소나무 좀벌레) 둥지에서 서로 도움을 주며 공생하는‘한 지붕 세 가족’이 발견됐다. 두 종류의 생물이 도움을 주고받으며 공생하는 경우는 많으나 세 종류 생물의 공생은 처음이다. /주완중기자 wjjoo@chosun.com개미는 진딧물을 무당벌레로부터 보호해주는 대신 달콤한 꿀물을 받아먹는다. 생물이 서로 이익을 주며 함께 사는 상리공생(相利共生)이다. 하지만 도움을 주는 친구는 많을수록 좋은 법. 최근 딱정벌레인 소나무좀벌레와 곰팡이, 박테리아가 한 지붕 세 가족처럼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다중(多重) 상리공생 사례인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재미(在美) 한국인 과학자는 이 공생 관계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수퍼박테리아를 막는 데 이용될 수 있는 새로운 항생물질을 발견해 세계 과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소나무좀벌레(southern pine beet le)는 소나무 껍질에 구멍을 내고 그 안에 수백 개의 알을 낳는다. 이때 천천히 자라는 한 종류의 곰팡이도 알과 함께 소나무로 들어간다. 곰팡이는 좀벌레 덕분에 소나무 안에 안락한 집을 얻게 되고, 알에서 깬 애벌레는 곰팡이를 먹고 자란다. 자연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리공생이다.
박테리아가 곰팡이를 살린다
그런데 소나무엔 또 다른 침입자가 눈을 번뜩이고 있다. 좀벌레의 등에 몰래 올라탄 진드기 역시 자신의 애벌레를 먹일 곰팡이를 들고 소나무에 들어왔다. 진드기가 가져온 곰팡이는 생장속도가 워낙 빨라 좀벌레가 가져온 곰팡이를 압도한다. 좀벌레로선 공들여 만든 둥지를 진드기에게 고스란히 넘겨줄 위기상황이다.
다행히도 좀벌레에겐 소나무에 함께 온 또 다른 박테리아 친구가 있다. 미 위스콘신대의 진화생물학자인 카메론 큐리(Curie) 교수는 지난 3일 '사이언스(Science)'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악티노마이세테스(Actinomycetes)라는 박테리아는 진드기가 데려온 곰팡이를 죽이는 독소를 분비해 좀벌레 애벌레의 먹이인 곰팡이를 보호한다"고 밝혔다.
곰팡이를 키우는 동물로는 잎꾼개미(leafcutter ant)가 대표적이다. 이 개미는 나뭇잎을 잘라 곰팡이의 먹이로 주고, 대신 곰팡이에서 나오는 실 모양의 균사를 먹는다. 큐리 교수는 1999년 잎꾼개미 굴에서 박테리아가 곰팡이 서식환경을 좋게 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는 곤충과 곰팡이, 박테리아 사이에 다중 상리공생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역시 곰팡이를 먹이로 키우는 소나무 좀벌레를 연구했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석좌교수는 "1대1 상리공생에 비해 진화가 쉽지는 않지만 이론적으로는 여러 종류의 생물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돼 왔다"며 "자연에서 그 같은 공생관계를 밝힌 매우 흥미로운 연구"라고 말했다. 큐리 교수는 "다중 상리공생은 매우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다"며 "이미 또 다른 생물에서 같은 상리공생 관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수퍼박테리아 막는 항생제 찾기
이번 연구에서 하버드대 의대 존 클라디(Clardy) 교수팀은 박테리아가 분비하는 독소의 정체를 밝히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 팀의 주역은 서울대 출신의 박사후 연구원인 오동찬 박사. 오 박사는 핵자기공명·기체크로마토그래피 등의 첨단 물질 분석방법을 동원해 박테리아가 분비하는 독소가 지방산의 일종임을 밝혀냈다.
박테리아는 인간을 질병으로부터 구한 항생제의 원천이다. 하지만 최근 항생제가 듣지 않는 수퍼박테리아나 곰팡이가 퍼지고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클라디 교수는 "곰팡이 감염으로 인한 치명적 질병들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치료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곰팡이를 무력화시킬 천연 항생물질을 새롭게 갖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앞으로 악티노마이세테스 박테리아가 진드기가 가져온 곰팡이를 죽이는 정확한 메커니즘을 연구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