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탑]가재는 게 편
입력: 2008년 09월 29일 18:11:00
‘가재는 게 편’이란 말이 있다. 같은 부류의 비슷한 사람들끼리 편을 들거나 때론 잘못을 눈감아주기도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최근 공무원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내놓은 ‘공무원연금 개편안’을 들여다보면 적어도 이 속담은 ‘진리’다.
국내 공무원연금 재정은 사실상 파산 상태나 다름없다. 보험료 수입보다 연금 지출이 많아 올해에만 1조2684억원의 정부보전금이 투입됐다. 내년에도 1조9931억원의 국민 혈세가 지원되지 않으면 운영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혁명’에 가까운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고, 이는 곧 보험료를 전보다 ‘훨씬’ 많이 내고 연금 수령액을 ‘크게’ 줄이는 개편을 의미했다. 하지만 발전위가 내놓은 개편안의 뼈대는 ‘조금’ 더 내고 사실상 ‘그대로’ 받는 쪽으로 정리됐다. 이러니 재정적자 해소는 감히 마음조차 품을 수 없을 지경이다.
오히려 이번 공무원연금 개편안은 재직자와 현 연금수령자의 기득권 보호에 초점이 맞춰진 인상이 짙다. 안대로라면 재직자는 보험료를 조금 더 내지만 연금수령액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현 연금수령자의 수령액도 마찬가지다. 20년 재직자의 경우 보험료는 10.07% 더 내지만 첫 연금수령액은 현행 연금제도 아래서 받는 금액과 같은 수준이다.
이들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 신규 임용자가 재정 부담의 덤터기를 뒤집어썼다. 개편안에 따르면 신규 임용자는 30년 재직할 경우 연금 수령액이 선배 공무원들보다 25%나 줄어든다. 연금도 5년이나 늦은 65세에 받고, 유족연금도 10%나 깎였다.
공무원연금제도발전위원회 위원 명단을 보면 이 같은 상황이 얼추 이해된다. 위원 29명 가운데 위원장을 포함한 18명이 서울대학교 교수, 공무원노조 관계자, 기획재정부 국장 등 전·현직 공무원이거나 국책기관에 몸을 담고 있다. 몇년 후면 연금을 받게 될 당사자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 위원회가 그들의 ‘피같은’ 연금을 깎을 수 있겠는가.
발전위는 ‘공무원연금 수준이 국민연금보다 높아야 함’을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자기 논리의 모순에 빠지는 ‘애처로움’도 보였다. 위원회는 개편안을 설명하는 참고자료에서 ‘공무원연금 수준을 결정할 때는 공무원의 신분상 제약 등으로 인한 불이익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파업·태업 등 쟁의행위가 금지돼 민간에 비해 보수수준 결정이 불리하고, 영리활동과 겸직이 허가되지 않아 재산 형성에서도 각종 제한이 따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재산을 불리는데 제약이 많아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보다 많아야 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연금을 ‘훨씬’ 적게 받게 될 후배 공무원들은 파업이나 태업, 영리활동, 겸직, 주식투자를 맘껏 해 재산을 마구 불려도 된다는 얘긴가. 자신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서는 후배의 손해도 눈 ‘질끈’ 감고, 국민의 혈세는 더더욱 아랑곳하지 않는 비정함이 이번 공무원연금 개편안에 깃들어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김 준|전국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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