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 칼럼]방황하는 북극곰과 신자유주의
입력: 2008년 09월 30일 17:59:38
북극곰들이 방황하고 있다. 북극 지방의 빙하가 녹아 생활터전과 먹잇감이 줄어들자 곰들은 먼 바다까지 헤엄쳐 나가다가 익사하거나 굶주려 죽어가고 있다. 몇 달 전 미국 정부는 북극곰을 멸종 위기 동물로 지정했다. 더크 캠프손 내무장관은 “지난 30년간 빙하가 급속히 줄어 이대로는 가까운 미래에 북극곰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북극곰의 수난은 두 말할 것 없이 지구온난화가 낳은 업보 중 하나다. 그리고 그것은 고삐풀린 신자유주의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북극곰의 방황에 신자유주의를 갖다 붙이다니, 논리 비약 아닌가? 아니다. 둘 사이엔 ‘나비효과’ 이상의 구체적 인과관계가 있다. 자유시장과 경쟁, 이윤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받드는 신자유주의야말로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는 데 큰 몫을 했다. 그것이 북극곰을 굶주리게 하고 아프리카 코끼리가 물을 찾아 헤매게 하고 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국이 발표한 1980년과 최근의 북극해 지도는 그 사이 엄청난 면적의 유빙(流氷)이 사라졌음을 보여준다.
1979년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집권과 이듬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당선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상징적 출발점이었다. 당시 “사회와 같은 것은 없으며, 단지 개인으로서의 남자와 여자가 있을 뿐”이란 대처의 선언은 유명해졌다. 이는 과거 케인스주의, 복지국가, 사회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집착의 청산을 의미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본격화와 지구온난화의 심화가 비슷한 시기에 이뤄졌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 온난화로 북극곰 멸종 위기 -
영국 출신의 석학 데이비드 하비 뉴욕 시립대 교수(인류학)는 책 ‘신자유주의의 간략한 역사’에서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환경적 후퇴에 관심을 갖는다. 그는 “신자유주의화 시대는 지구 역사상 생물종의 가장 빠른 대량 소멸 시대”라면서 전세계 환경, 특히 기후 변화로 인간이 지구에서 살기 부적합해지는 상황을 경고한다. 그는 부시행정부가 (온난화 등) 환경 이슈의 과학적 증거에 의문을 표시하지만 정작 그들의 연구팀은 온난화 정도가 1970년 이후 급등했으며 국방부는 장기적으로 온난화가 테러리즘보다 미국의 안보에 더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해 입안된 사유화 등 구조조정 프로그램들이 많은 국가들의 마구잡이 삼림 파괴를 부추겼다고 보았다.
뉴욕발 금융위기는 미국이 주도해 온 신자유주의 작동 체제에 중대한 결함을 드러낸 일대 사건이다. 이번 ‘월 스트리트의 파산’을 ‘신자유주의의 종말’, 또는 ‘레이건·대처리즘의 종언’이라고 규정하는 등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이번 사태를 지구온난화 문제와 연결해 파악하는 시각이다. 이는 단순화하면 ‘돈놀이’일 뿐인 금융자본주의의 천박성을 넘어 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미국의 온난화 저지 운동가 조지프 롬은 인터넷 신문 허핑턴포스트에서 “금융위기가 기후위기보다 무서운 것인가?”란 질문을 던진 뒤 “그 근처에도 못 간다”고 자답했다. 그는 “2012년 이전에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너무 늦다. 앞으로 2~3년 안에 무엇을 하느냐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는 유엔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IPCC)의 경고를 소개했다. 그는 해수면 상승, 사막화 등 기후변화가 초래할 대재앙들을 꼽고 가장 무서운 것은 그 재앙이 돌이킬 수 없고 우리의 자녀와 그 후대에까지 미칠 것이란 사실이라고 말했다. 롬은 이어 “1조달러의 온난화 방지 기금이면 청정에너지 전환, 에너지 절감 등 재앙을 피하기 위한 작업을 궤도에 올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 현재의 금융재앙을 피하지 못할 경우는 어떨까. 잘못 투자한 회사들은 돈을 잃거나 파산할 것이다. 가계는 당분간 분에 넘치는 소비를 중단해야 할 것이며 유지할 수 없는 집을 산 사람은 집을 잃어야 할 것이다. 금융혼란이 가라앉기까지 몇 년 동안 수천만명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 신자유주의의 또 다른 재앙 -
그의 결론은 훨씬 심각한 기후위기를 무시하면서까지 조달러 단위의 국민세금을 기업 구제금융으로 날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란 것이다. 유럽에서도 금융위기로 온난화 대책에 차질이 빚어져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여전히 미국경제는 강하다는 신앙 속에 ‘금융선진화의 모델’을 향해 달려가려는 형국 아닌가.
<김철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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