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대란(大亂) 앞에 우리는 나그네쥐처럼 행동한다
최재천의 행복한 책베개
도모노 노리오 《행동경제학》
최재천·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입력시간 : 2008.10.24 22:00
한때 생물학자들은 나그네쥐가 이른 봄 북유럽의 초원을 헤매다가 갑자기 얼음이 채 가시지도 않은 강물로 뛰어들며 자살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캐나다 생태학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자살을 하는 게 아니라 몰살을 당하는 것이다. 먹이를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가 실수로 물에 빠져 죽는 것이란다. 졸지에 낭떠러지를 발견한 맨 앞의 쥐가 급정거를 시도하지만 뒤에 따라오는 쥐들에 밀리면서 한꺼번에 떼죽음을 당한다. 혼잡한 극장 안에 불이 나면 정작 불에 타 죽는 사람보다 모두 출구로 몰려들며 깔려 죽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얼마 전부터 세계 시장을 강타한 금융위기에 냉정을 잃고 허둥대는 우리의 행동에서 나는 나그네쥐의 모습을 본다. 아직 실물경제 자체가 붕괴된 것도 아니고 정부가 최악의 사태를 막아주겠다고 하는데도 시장의 동요는 멈출 줄 모른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동안 경제학은 경제의 주체인 인간을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동물로 보고 모든 이론을 정립하여 시장의 동향을 예측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 같은 규범적 접근이 무참히 무너지는 걸 보고 있다.
경제적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명확하고 변함없는 취향을 바탕으로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상품이나 조건을 선택하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상품을 구매하는 과정만 보더라도 이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가정인지 알 수 있다. 일본 경제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가장 적합한 해답을 찾는 데 상품의 수가 10가지일 경우 수퍼컴퓨터를 사용하면 0.001초 만에 해답을 얻을 수 있지만 40가지만 돼도 12.7일이 걸린단다. 도대체 무슨 재주로 우리의 두뇌가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경제학의 지평이 변하고 있다. 1978년 '제한적 합리성'을 주장한 허버트 사이먼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한 '행동경제학'은 드디어 2002년 대니얼 카너먼의 수상을 계기로 경제학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최근 하버드대학 경제학과의 신임 교수들은 대부분 행동경제학 또는 신경경제학 전공자들이다. 2006년 일본 메이지대학의 도모노 노리오 교수의 저서 《행동경제학》(지형)이 우리말로 번역되었는데 이 분야에 대한 입문서로 손색이 없어 보여 여기 소개한다.
행동경제학은 인지심리학과 행동생물학이 경제학과 만나 탄생시킨 통섭적인 학문이다. 경제학의 '효용'은 신경과학에서 말하는 '보상'과 동일한 개념이다. 행동생태학은 이제 뇌과학의 실험테크닉까지 이용하여 효용을 측정하려 하고 있다. "더 위대한 사람이란 자기 자신의 판단을 최대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더 바보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지만"이라고 한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의 말을 상기하며 나는 왜 경제학이 이제야 드디어 인간의 행동을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의아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