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사태에 대처하는 도도새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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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3.23 15:03 Url 복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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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에 모리셔스라는 섬나라가 있다. 지금도 유럽인들에게는 휴가철마다 지상낙원으로 인식되는 곳이지만, 1598년 포르투갈 선원들이 이 섬을 발견했을 때에도 이상향이었다. 처음 보는 식물과 처음보는 동물들의 낙원이었다.
날지 못하고 처음 보는 유럽인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25킬로그램짜리 커다란 새를 보고서 침략자들은 ‘바보새(Dodo)’라고 부르며 닥치는 대로 수집을 하고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다. 거칠고 자기 보호 능력이 있는 거대한 짐승이었다면 그 누가 감히! 그저 연약하고 바보 같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1663년 마지막 도도가 죽고, 재앙이 닥쳤다. 모리셔스의 주된 수종이던 카바리야 나무가 사라진 것이다. 이 나무의 씨앗은 육질이 단단해 도도가 먹고 육질을 소화해 똥으로 배출하지 않으면 번식이 되지 않았다. 이 나무가 번식을 해야 다른 새들이 그 잎과 가지를 먹고 사는데, 카바리야가 사라지고 나니 새들의 절반이 또 사라졌다. 지금 유럽인의 지상낙원 모리셔스는 300년 전 이상향 모리셔스와 동일하지가 않다.
고인의 이름을 들먹이며 글을 쓴다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도 않고 흥분되지도 않는다. 연전에 통계를 찾아보니 내가 태어난 1966년에 함께 태어난 사람이 68만 명 조금 넘었다. 내 나이가 마흔넷이니, 이 나이까지 살지 못하고 죽은 분도 여럿 있을 것이고, 나보다 훨씬 오래 살 사람도 많을 것이다. 장자연이라는 여자는 자기 동갑내기들의 삶보다 훨씬 짧은 시간을 누리다가 하늘로 너울너울 날아갔다.
하나의 생명체가 죽는다는 것이 뭘까. 누군가가 임종을 앞둔 사람의 전과 후 체중을 달아보니 2.9그램이 차이가 나더라고 했다. 2.9그램의 영혼 유무가 생명의 유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곁에는 천지사방에서 2.9그램짜리 영혼들이 날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집단을 이뤄서 해변으로 올라오는 고래들을 제외한다면 인간은 유일하게 자살을 할 수 있는 동물이다. 고인의 경우는 마지막 행동을 스스로 했으되, 본질적으로는 자살 ‘당했다’고 할 수 있다.
왜? 누가? 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
어린이 교복 광고에도 섹스 코드가 만연한 세상이 되었다. 핸드폰 문자 무한대 이용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꽃보다 남자’가 구혜선에게 ‘가지고 싶다’고 얼러대고 구혜선은 ‘우리는 어린데’라고 가슴을 감싼다. 그런 광고를 보며 자라난 아이들이 훗날 사회에 나가 세상을 바라볼 때 그 눈망울 속에는 굉장히 많은 왜곡된 성 코드가 매트릭스처럼 얽혀 있게 될 것이다. 꼰대 같은 말이지만, 1980년대 로드 스튜어드라는 가수가 부르는 노래 하나가 제목이 'Don't you think I'm SEXY'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기도 했다. 지금 그런 식으로 나라가 굴어대면 큰일날 일이지만, 지금은 해도 너무 한다. 당장이 문제가 아니라, 미래가 문제다.
믿어라, 이거 교복 광고다.
눈앞의 장삿속을 채우기 위해 미래를 희생하는, 전형적인 한탕주의 방식이다. 왜? 미래는 보이지 않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됐는가. “공부 안 해도 대학 간다”고 역설한 국무총리 이해찬의 말에 이해찬 세대는 어떻게 됐지? 대한민국의 브랜드가 몇 등이라고?
그런 짧디 짧은 장삿속이 장자연이라는 여자를 천사로 만든 것이다. 한류가 어떻고, 드라마가 어떻고, 그래서 대한민국이 세계 시장에 내세울 것은 문화컨텐츠라고 떠들어대는 이 시대에, 바로 그 문화컨텐츠를 생산해내는 사람들이 섹스코드를 유포하고, 그 코드에 중독이 된 시장이 컨텐츠라는 가상공간을 넘어 현실세계에서 섹스코드가 아닌 섹스를 요구하게 되는 모순. 드라마에서는 청순하고 가련한 이미지를 요구받고, 드라마 이면에서는 그 정반대의 이미지를 강요받는 모순.
이듬해 봄을 위해 헛간에 보관해둔 종자를 한끼 배고프다고 밥 지어 먹는 어리석음이 만든 모순이다. 그네들, 정말 그 정도로 굶주려 있는가. 아니, 대한민국이 종자로 밥해먹을 정도로 규율과 원칙이 개차반 된 것인가.
눈앞의 이득과 쾌락에 장님이 되어버리면 그 쾌락의 대상은 물론 쾌락의 브로커와 쾌락을 좇던 자의 큰 이득도 사라지게 된다. 틀림없다.
허망하게 천사가 된 장자연 그리고 우리 시대의 유능한 여배우들을 도도새라 부르고, 이 시대 우리가 갈망하는 이상적인 문화컨텐츠와 우리의 대중 연인을 모리셔스라 부르겠다. 인류가 멸망하면 분명히 어떤 새로운 종(種)이 이 푸른 행성의 지배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종은 인류가 아닐 것이고. 우리의 모리셔스를 위해, 우리의 도도새를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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