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한국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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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1.08 22:17
▲ 이 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한국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장 2010년 경인년은 호랑이해다. 호랑이는 한국을 상징하는 동물로 대부분 한국인의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 사람만큼 다양한 모습의 호랑이 민화·석상·조형물을 가지고 있고 호랑이 그림을 사랑하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특별한 현상이라 일찍이 육당 최남선은 조선을 호담국이라 하였다.
그러나 자타가 공인하는 호랑이의 나라에서 정작 호랑이는 찾을 수 없다. 아직도 남한에 야생 호랑이가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간혹 있기는 하나 이는 과학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 주장이라기보다는 희망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말 한국 호랑이는 사라졌는가. 아니다. 한국 호랑이는 여전히 야생에 살아 있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닌 수백 마리가. 다만 이 호랑이들은 한반도가 아닌 한반도에 바로 이웃한 극동러시아의 연해주와 아무르 지역에 살고 있을 따름이다. 이곳에 남아 있는 야생 아무르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의 숫자는 약 400 내지 500마리에 이른다.
러시아 땅에 살고 있다고 러시아 호랑이가 아니다. 지금 호랑이가 살고 있는 땅이 비록 지금은 러시아 영토지만 과거 고구려와 발해의 땅이었고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우리 동포들이 개척했고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이렇게 연해주는 한민족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곳인데 지금 여기 살고 있는 호랑이를 남의 것이라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호랑이에게 국경은 아무 의미가 없으므로 지금도 북한·러시아·중국 접경지대의 호랑이는 세 나라를 비자 없이 넘나들고 있다. 더욱이 최근 유전학적 연구 결과는 한반도에 살았던 호랑이가 아무르호랑이와 유전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한반도에 인접한 극동러시아에 살아 남아 있는 호랑이가 바로 한국 호랑이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호랑이 개체군을 회복시키면 이들은 자연스럽게 확산되어 북한의 백두산 지역과 백두대간도 서식처로 삼게 될 것이다. 비록 한반도 전역에 호랑이가 살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통일 후 한반도 일부에서나마 우리 후손이 호랑이 포효 소리를 듣게 하려는 희망을 가지려면 지금 극동러시아에 남아 있는 야생 호랑이 개체군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극동러시아에 남아 있는 이 호랑이 개체군도 지금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한반도에서 이들이 사라진 것과 같이 또다시 밀렵·벌목·개발에 의한 서식지 감소, 산불 등으로 인해 개체 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살리기 위해 많은 야생동물 보호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전 세계의 야생동물 관련 기구와 관심 있는 기업 및 개인들이 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자타가 공인하는 호랑이의 나라 대한민국은 연해주에 남아 있는 야생 한국 호랑이를 살리는 일에 거의 관심이 없다.
일부에서는 러시아나 중국에서 호랑이를 도입하여 DMZ 또는 인접지역에 반자연적 사파리 형태의 호랑이 공원을 조성하는 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런 식으로 '내 호랑이'를 찾거나 가져야 할 필요성도 있겠으나 그보다 훨씬 중요하고 지금 당장 시급한 일은 꺼져가는 촛불과도 같은 운명에 처한 극동러시아의 한국 호랑이 야생 개체군을 되살리는 일이다. 여기에 대한민국 정부와 기업, 민간이 관심 가져주기를 고대한다. 진정으로 한국 호랑이 살리기에 관심 있다면 인터넷에서 '한국범보존기금'을 검색해 보자. 지금 한국 호랑이를 살리기 위해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