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기억한다, 당신의 35년 전 일을
신용관 기자 qq@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기사100자평(1)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요즘 싸이 공감 잇글링 조선블로그 MSN 메신저스크랩메일인쇄입력 : 2011.05.1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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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 손에 의해 쓰러져 가던 가족 잊을 순 없지만 코끼리는 인간들을 보호했다
코끼리는 아프다
G. A. 브래드쇼 지음｜구계원 옮김｜현암사｜512쪽｜1만8000원
우리가 기억할 만한 여성 동물학자는 세 명이다. 제인 구달, 다이앤 포시, 그리고 신간 '코끼리는 아프다'의 저자 G. A. 브래드쇼. 널리 알려진 제인 구달(1934~)은 침팬지가 전공 분야다. 40년 동안 아프리카 케냐·탄자니아 등지에서 침팬지들과 함께 살았다. 침팬지가 채식뿐만 아니라 육식을 좋아한다는 사실, 침팬지가 인간과 마찬가지로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 가족 간의 유대감이 깊고 사회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모두 처음 발견했다. 구달에겐 동물학과 관련된 학사 학위도 없었다.
▲ ⓒ2008 The Richard Avedon Foundation.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미메시스)중에서.미국인 다이앤 포시(1932~1985)는 고릴라 전문가다. 1966년부터 15년 동안 아프리카 열대 우림에서 고릴라와 생활하며 고릴라의 끈끈한 가족 관계를 밝혀냈다. 고릴라는 새끼 한 마리를 지키기 위해 집단이 전멸할 때까지 저항하고, 잡힌 새끼 고릴라도 결국 삶을 포기하고 만다. '안개 속의 고릴라'라는 저서를 남긴 그녀는 책 출간 3년 후, 얼굴이 난자된 채 살해당했다. 아프리카 야생동물 밀렵집단의 소행으로 짐작할 뿐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영장류를 대상으로 한 이 둘과 달리 G. A. 브래드쇼는 어느 학자도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코끼리를 평생 연구했다. 야생동물 보호단체인 미 오리건주 케룰로스센터 이사이자, 부설 '이종(異種·Trans-Species)연구소' 소장이다. 브래드쇼는 인도·아프리카·미국 캘리포니아 등 광범위한 지역에 걸친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면서, 신경과학·심리학·동물행동학 연구를 활용하여 코끼리의 마음, 감정, 그리고 일생을 탐구하고 있다. 생태학과 심리학 등 2개 분야 박사학위를 가진 그녀는 동물 트라우마 전문가.
우선 책에서는 "정말 그래?" 싶은 사실이 많이 나열된다. 코끼리는 코로 물체 표면의 거친 정도나 온도도 느낄 수 있으며, 청각은 예민하여 3㎞나 떨어진 곳에서 나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뇌는 5~6㎏(사람은 평균 1.4㎏)으로 매우 영리하며 기억력이 탁월하다. 죽은 동료나 가족의 마른 뼈를 후각을 통해 구분하고, 수백㎞ 떨어진 물가를 기억하며, 심지어 35년 전에 헤어진 인간을 알아보고 그 사람과의 지난 일을 기억한다. 책은, 그러나, 이런 야생의 코끼리가 아닌 울 안에 갇힌 사육 코끼리에 방점을 찍고 있다. 제한된 공간에 갇힌 코끼리들의 신경질과 울분, 나아가 정신질환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여러 야생동물보호협회는 서커스단이나 동물원 등에서 죽기 직전까지 몰린 새끼 코끼리들을 구조해 건강한 청년 코끼리로 키워내는 일을 돕고 있다. 새끼 코끼리들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순간에 마음과 신체에 심각한 충격을 받은 상태로 발견된다. 그러나 보살핌을 받은 코끼리는 인간이 자신의 가족에게 저지른 잔인한 사건들을 용서하고 자신을 돌봐준 사람들을 또 다른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어른이 된 고아 코끼리가 새끼들을 데리고 어린 시절 함께 지낸 인간 가족을 방문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적절한 치유 과정을 거치지 못한 대부분의 '갇힌' 코끼리들은 어미와 가족의 상실 같은 트라우마를 되씹으며 고통받는다. 조련사를 죽이고 관객을 공격하고 동료에게 코로 채찍질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끔찍한 사고를 겪은 사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보인다.
저자는 위기에 처한 코끼리를 왜, 어떻게 도와야 하는가를 담은 십계명을 제시한다. 또한 저자는 "잔인하게 학대당한 코끼리가 끊임없이 보여주는 용서와 사랑의 몸짓은 우리 인간의 행동을 돌아보게 한다"고 말한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낸 코끼리의 상처를 치유할 방법을 찾는 과정은 바로 우리 인간의 문제를 더듬어 모색하는 길이 된다는 것이다. 코끼리가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을 보게 되면, 인간과 코끼리, 인간과 인간의 '관계'까지 생각의 깊이가 깊어진다는 얘기다. "이제는 코끼리가 인간의 정체성과 의지에 의문을 제기해야 할 때이다." 원제 Elephants on the 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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