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기러기 한 쌍이 짝 지어 날아가는 모습, 이들은 짝이 있을 때 훨씬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출처 : 위키백과
야생의 동물들은 최대한 많은 짝을 만나 더 자손을 남기려 한다. 동물들의 일부다처, 혹은 일처다부 경향은 자신의 종을 오랫동안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회색기러기는 특이하게도 20년 넘게 하나의 짝만을 고집한다. 한 번 짝을 맺는 상대에게 매우 성실한 태도를 보이는 일부일처, 일편단심 동물인 것이다.
이렇게 회색기러기가 일부일처 짝을 유지하는 게 스트레스를 줄여 생존에 유리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오스트리아 콘라드 로렌스연구소의 클라우디아 왓쳐 박사는 회색기러기의 심장박동을 조사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바이올로지 레터(Biology Letters)’ 최신호에 발표했다.
왓쳐 박사는 회색기러기 25마리에 심장박동을 살필 수 있는 장치를 부착하고 여기서 나온 값을 살폈다. 수컷 회색기러기 두 마리가 싸울 때의 심장박동을 측정한 결과, 짝 있는 회색기러기의 혈압이 혼자인 회색기러기보다 약 10% 정도 낮았다. 암컷 회색기러기의 경우도 짝이 멀어졌을 때 심장박동이 급격히 빨라졌으나 짝이 근처로 돌아오자 혈압이 안정을 찾았다.
왓쳐 박사는 “회색기러기의 심장박동은 스트레스 수준을 반영하는데, 특히 대립 상황일 때 혈압이 높아진다”며 “짝 있는 회색기러기들은 근처에 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여유를 가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회색기러기는 또 동료가 죽으면 심장박동이 급격히 떨어지고, 몇 년간 낮은 혈압을 유지하는 걸 발견했다. 이들은 새로운 동료를 찾기는 하지만 오랫동안 슬픔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는 “회색기러기에게 감정을 논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일종의 우울증 같은 증상이라고 볼 수 있다”며 “회색기러기처럼 사회성이 강한 동물의 경우 짝이 생리적으로 무척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일부일처제처럼 장기적인 관계를 맺는 짝이 있는 편이 늘 새로운 짝을 찾는 것보다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좋다”며 “바로 이 점이 사회적으로 짝을 유지해서 얻는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회색기러기의 경우 모두가 이성과 짝을 맺지는 않았다. 수컷끼리 짝을 맺는 경우도 있고, 수컷 둘과 암컷 하나가 짝을 이루기도 했다. 왓쳐 박사는 “표본 수가 적기는 하지만 이성애와 동성애 간에 특별한 차이를 찾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