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죽음) “저기가 출구 …” 빛 드는 곳에 희생자 몰려
이름: 흰빛/한홍철
등록일: 2008-01-09 11:00
조회수: 203 / 추천수: 24
“저기가 출구 …” 빛 드는 곳에 희생자 몰려
중앙일보|기사입력 2008-01-09 05:00 |최종수정2008-01-09 10:37
[중앙일보 최선욱.김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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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10시30분. 화마가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시 코리아2000 냉동창고 입구. 대낮인데도 축구장 3배 크기의 냉동창고 안쪽은 어둠에 갇혀 있었다. 추가 사망자를 확인하려는 소방대원을 따라 들어간 창고 내부에서는 아직도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병 걸린다”는 소방대원의 경고에 얼른 마스크를 썼다. 짧은 순간에도 숨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천장 구조물은 무너진 지붕과 함께 한쪽 끝을 땅에 기대고 있었다. 건물 벽을 구성하고 있던 패널들도 비 맞은 빨래처럼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드럼통과 LP가스통이 곳곳에서 발에 걸렸다. 언뜻 보아도 수십 개가 넘어 보였다.
어둠 속 어디선가 ‘쩔그렁 쩔그렁’하는 소리가 들려 찾아가 봤다. 창고 왼쪽 끝에 있는 작업실 앞이었다. 10여 명의 소방대원이 구부러진 패널들을 잿더미 속에서 꺼내 펴고 있었다.
“위험해요! 어서 비켜요!” 소방대원들이 호통을 쳤다.
창고 입구에서 70여m 떨어진 이곳에서 어젯밤 7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사망자들은 창고 내부에 연기가 가득 차자 출구를 찾기 위해 이곳으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패널과 콘크리트 외벽 사이의 공간을 통해 비상통로로 가던 중 모두 숨졌다. 이들의 시신을 발견했던 소방대원은 “패널이 열기에 쓰러지면서 이들을 덮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시 어둠 속에서 10여 분을 헤맸다. 갑자기 한 줄기 빛이 나타났다. 드럼통 굵기만 한 빛줄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 빛줄기를 통해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비쳤다. 하지만 그 계단 부근에서도 6구의 시신이 발견됐었다.
현장에 있던 소방관은 “사망자들은 빛줄기를 쫓아왔으나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10여m 전쯤에서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진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희생자들은 ‘한줄기 빛’을 봤으나 그 빛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오지는 못했던 것이다.
미로 같은 창고 내부를 걸어가다 불에 검게 그을린 환풍기를 찾았다. 환풍기 인근에서도 4구의 시신이 발견됐다고 한다. 사고 당시 엄청난 연기가 이 환풍기를 통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본 희생자들이 눈물을 쏟아 가며 이 환풍기로 달려 들었을 것이다.
창고에 머문 1시20분간 내내 소방대원과 구조견은 아직 남아 있을 희생자들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구조견 뒤에서 발걸음을 뗄 때마다 탄화된 잔해가 밟혀 ‘바스락 바스락’ 소리가 났다. 재가 밟혀 부서질 때 생기는 먼지에 재채기가 멈추질 않았다. 진화작업에 사용된 물이 아직도 천장에서 뚝뚝 떨어졌다. 그 주위 바닥은 재와 물이 뒤섞여 갯벌을 밟는 듯한 느낌을 줬다. 열기가 남아 있는 갯벌이었다.
냉동창고 내부는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쳤을 희생자들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었다. 화마가 덮친 트럭은 앙상한 뼈대만 남았다. 철골 구조물은 엿가락처럼 휘어 버렸다. 주인을 잃은 주황색 휴대전화, 자동차 열쇠, 타버린 운동화가 널려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