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 칼럼]동물 사랑, 인간 사랑
입력: 2008년 06월 18일 17:53:03
중국 연변 작가 허련순씨의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까’ 하는 소설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의 하나는 “인류의 사랑은 동물의 사랑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작품의 주조가 되어있는 인간애 또는 인인애(隣人愛)에 이어지는 말이지만, 주인공이 회상하는 어떤 사건에 나온다. 집에서 기르던 개가 옆집 주인을 물었다.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지만, 그는 개를 잡아서 약으로 써야 뒤탈이 없다고 고집한다. 주인공은 아이들과 상의하여 개를 죽게 하느니 먼 곳에 버리기로 한다. 이들이 결정한 대로 개를 버리는 것은 죽이는 것에 못지않게 잔인하다고 할 수도 있으나, 동물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 쉽지 않음을 말해준다고 할 수도 있다.
광우병은 동물학대 결과물
인도를 방문하는 사람에게 눈에 띄는 일의 하나는 평화롭기 그지없어 보이는 사람과 동물의 공존 관계다. 사람이 다니거나 자동차가 다니는 거리에 성스러운 동물로 간주되는 소가 타고난 대로의 걸음으로 걸어가고 사람과 차가 이를 비켜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교통이 붐비는 시내를 조금 벗어나면, 주인 없는 개들이 어슬렁어슬렁 길을 다니면서 던져 주는 음식을 얻어먹고 떼를 지어 길가에서 천하태평으로 잠을 잔다. 필자가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세운 산티니키탄의 비스바바라티 대학의 캠퍼스에 갔을 때에도, 개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고 머리를 만져주면, 온순한 눈으로 사람을 쳐다보았다. 농촌에서는 닭과 염소가 개와 사람 사이를 오가며 모이를 주워 먹고 풀이나 나뭇잎을 뜯어 먹는다. 이들 동물에게 문제가 있다면, 척박한 땅에서 풀이니 나뭇잎이 별로 풍부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아는 교수 한 사람은 원숭이와 사람의 공존에 대하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바나나 노점상이 있어, 길거리에 사는 원숭이와 친하게 지내는데, 그는 늘 바나나를 떼어 원숭이에게 준다. 원숭이는 노점상이 자리를 비워도 방치되어 있는 바나나는 먹지 않는다. 그 이유를 물으니, 오래 오래 두고 바나나를 얻어먹을 관계를 한 번의 욕심으로 깨버릴 만큼 원숭이는 어리석지 않다는 것이 답이었다.
필자가 머물던 대학 식당에서, 음식을 가져오는 청년은 끼니마다 먼저, 채식인가 비채식인가를 물었다. 외국인은 비채식이 많았지만, 인도인은 대체로 채식이었다. 한국인의 입맛에는 대체로 싱거운 것이 인도의 일상 음식이었는데, 인도의 채식은 정말 맛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인도인들은 검소한 채식의 기율에 만족했다.
인도에서 동물에 대한 존중은 사람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인도는 신흥산업국으로 곧 경제 강국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증대되는 부와 더불어 사회 긴장도 커지고 있다. 그것은 더러 폭력 충돌로 폭발한다. 한 인도 교수는 카스트 차별이 인도 사회의 저주라고 크게 분개하고 있었다. 카슈미르 정책, 대 파키스탄 관계들을 보면 대외 정책도 반드시 평화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없이 복잡한 인종, 언어, 문화, 역사적 배경, 식민지 지배의 유산, 공산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가 병존하는 연방 체제, 역사적으로 누적되고 산업화와 더불어 심화되는 사회 문제-이러한 것들을 생각하면, 인도가 독립 이후 줄곧 민주주의-사회적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해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것을 설명하는 원인들을 단순화할 수는 없지만, 거기에 인간과 동물-그리고 모든 생명체에 대한 자비를 강조하는 인도의 문화적 유산도 적지아니 작용했을 것이다. (채식주의의 이념적 근거는 자비심이다.) 동물에 대한 사랑이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그리고 평화를 기조로 하는 삶의 질서로 이어진다는 것이 전적으로 공허한 말은 아닐 것이다.
광우병은 따지고 보면 동물 학대의 결과이다. 그것은 대체로 채식 동물인 소의 사육에 동물사료를 쓰는 일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폐기물을 활용하고 단백질 함량이 높은 사료로써 쇠고기의 질을 높이자는 뜻에서 나온 일인데, 근본적인 동기는 축산에서 얻을 수 있는 이윤을 극대화하자는 데 있다. 산업 능률을 위하여 동물로부터 생명체로서의 자연권을 빼앗는 일이 사료의 문제에만 한정되지 아니하는 것은 물론이다. 오늘날 축산업은 완전히 공장 방식으로 운영된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소나 닭은 자연스러운 삶의 공간이나 그 안에서의 동작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로 제조 과정에 투입되는 생산 원료가 되어 있다. (30개월 미만의 소는 안전하다고 하지만, 사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것은 소의 생명을 2년 반으로 무자비하게 단축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축산업의 공업화와는 다르게 세계 도처에서 동물을 해방하자는 소리도 높아지고 개인적으로는 채식주의자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가오는 식량 위기를 생각하면, 육류 소비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곡물량을 수배로 늘리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문제를 안은 식생활 습관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문제가 코앞에 닥쳐야만 해결을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러나저러나 동물 해방이나 채식이 일반화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물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극단적인 잔인 행위를 줄일 수는 있다.
영국에서는 특히 근년에 이와 관련된 여러 입법 조치가 이루어졌다. 1988년 소에게 동물 사료를 금지하게 된 것은 광우병이 가축전염병으로 창궐하게 된 직후였다. 어린 소-송아지 수출은 영국 주요 산업의 하나다. 결국은 식용이 되는 까닭에 도살한 후 수출해도 되는 것인데, 냉동차의 경비를 절약하기 위하여 이 송아지들은 산 채로 수송된다. 영국 의회는 95년에 수송되는 소에게 15시간마다 사료와 물과 휴식을 주어야 한다는 법을 제정했다. 이것은 유럽 연합(EU)에서의 24시간 규정을 크게 단축한 것이어서 지금도 유럽연합 다른 여러 나라들과의 마찰 원인이 되어 있다. 영국의 법은 이러한 시간제 휴식의 문제 외에도 수송 도중 소의 움직임을 억죄는- 옛날 한국에서 범죄자에게 씌우던 칼에 해당하는-나무 칸막이를 금지했다. 아직도 논란이 끝나지 않는 법으로, 2005년에는 전통적으로 귀족의 스포츠가 되어 왔던, 여우 사냥을 금지하는 ‘수렵법’이 통과되었다. 이것도 동물 보호와 관련된 법이다.
생명권에 대한 의식 높여야
역사적으로나 식민지 통지에서나 잔인한 일도 많았던 것이 영국이지만, 영국 사회는 크고 작은 잔인성의 문제에 특히 민감한 것으로 보인다. 입법의 예를 떠나서 영국 낚시꾼들의 관행에서도 그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낚시 장비의 하나로 나무망치를 들고 다닌다. 그것은 물고기를 잡자마자 그 머리를 내리치는 데 사용된다. 물을 떠난 고기의 고통을 줄여주자는 것이다.
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과 관련하여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의 하나는 강화된 가축전염예방법을 통과시키는 일이라고 말하여진다. 어떻게든지 쇠고기 수입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겠지만, 이번 기회에 전체적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동물의 생명권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고, 쇠고기 수입에 생명 윤리의 제동을 거는 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인간 사랑과 연결되는 일이다.
<김우창 | 고려대 명예교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