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사이코패스
김홍진 논설위원 mailer@chosun.com
논현동 고시원 '묻지 마 살인' 사건 범인 정상진은 자기 방에 인형뽑기 게임에서 뽑은 인형 수십 개를 색깔별로 가로 세로 줄을 지어 쌓아놓고 있었다고 한다. 방구석엔 두루마리 휴지, 사각 휴지가 수북했다는 것이다. 정은 그런 자기 방을 누구에게도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그 방에 틀어박혀 식탁에 놓아둔 물병하고 오랫동안 무슨 얘기를 하거나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인형뽑기' 놀이에 하루 160만원을 쓸 정도로 엉뚱한 데 집착했다.
▶정상진은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보였다. 사이코패스는 겉으론 멀쩡하지만 무슨 계기가 생기면 난폭하게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반(反)사회적 성격장애자를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말을 유창하게 잘하고, 충동적이어서 자기 제어를 하지 못하고,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고, 잔인하다는 것이다(로버트 헤어·진단명 사이코패스). 정상진은 피해자들에게 동정심 같은 건 느끼지도 않았다. 스무 군데를 찔려 죽은 사람도 있을 정도다.
▶청송교도소에 수감된 살인, 강간 등 강력범 80명에게 무표정한 얼굴 사진 3장과 웃는 사진 1장을 보여주고 웃는 얼굴을 고르라고 했더니 제시간에 맞힌 사람이 드물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감정에 대한 반응이 느린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사이코패스는 감정을 지배하는 뇌의 전두엽 기능이 일반인의 15%밖에 안 된다고 한다. 공격성을 억제하는 분비물도 부족해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적이 된다.
▶사이코패스의 대부분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갖고 있다. 6월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7명을 칼로 찔러 죽인 범인 가토의 집은 어렸을 때 가족들이 식탁에서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가토의 어머니는 완벽주의자였다. 아들이 작문을 하다 하나만 틀려도 고치라고 한 후 "10, 9, 8, 7…" 하고 셌다. 열을 셀 때까지 고치지 못하면 뺨을 때렸다. 뺨을 맞고 울면 운다고 또 때렸다. 가토의 동생이 시사주간지에 실은 고백문에 나오는 이야기다.
▶캐나다 범죄심리학자 로버트 헤어는 1993년 사이코패스가 캐나다 인구의 1%가 되고 미국 뉴욕에만 10만명 정도 있다고 추정했다. 헤어 박사는 "경쟁만을 가르치는 사회, 이기는 자만 영웅이 되는 사회에서 사이코패스는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묻지 마 살인이 연속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올해만 4번째였다. 갈수록 세상이 무서워진다.
입력 : 2008.10.21 22:06 / 수정 : 2008.10.22 11:25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