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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爆(원폭) 이겨내고 光州에 열매 맺은 감나무
입력 : 2014.12.31 03:04 在日교포로서 핍박 견디며 미술품 모아 기증한 하정웅
평화·용서·상생의 의미 담아 百歲 감나무 분신 심어 결실
국적도 경계선도 없는 나무… 共榮의 상징으로 피어나길
노치환 이수현의인문화재단설립위 사무총장현해탄 너머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노인의 목소리는 흥분돼 있었다. "열렸어요! 드디어 감나무에 감이 열렸어요." 보름 후인 지난 11월 중순 방한한 노인을 따라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중외공원을 찾았다. 70도 경사를 넘는 비탈을 엎어지고 미끄러져 가며 간신히 기어올랐다. 비탈진 언덕 한쪽에 어른 키를 조금 넘는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무성한 가지 사이로 감 하나가 댕그랗게 달려 있었다. 발갛게 익어가는 감을 지긋이 바라보는 노인의 눈시울이 홍시처럼 붉게 물들더니 이내 촉촉이 젖어들었다.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에 반소(半燒)된 채로 유일하게 살아남아 불굴의 생명체로 희망을 주던 수령(樹齡) 100년 감나무 한 그루의 분신(分身)이 '전쟁반대와 평화' '한·일 선린'의 염원을 담아 2000년 4월 제3회 광주비엔날레 '시간의 소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심어진 뒤 갖은 시련 끝에 14년 만에 결실한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일본 출신의 세계적 조형미술가 미야지마 다쓰오(宮島達男·57) 도후쿠예술공대 부학장이 핵 반대와 평화에의 염원을 담아 1996년 나무심기 운동을 시작한 이래, 워싱턴 등 미국 3개 도시와 이탈리아·아프가니스탄·말리 등 22개국 239개 도시에 심어졌다. 아시아에선 한국 광주가 유일하다. 2000년 광주비엔날레 전시기획위원이었던 재일교포 2세 컬렉터 하정웅(75) 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이 나가사키 원폭 참화에서 살아남은 이 감나무를 통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처를 치유하고 세계 평화와 인권의 존엄성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일념으로 실현시킨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식재 시점부터 수난이 시작됐다. 미야지마씨와 광주 인사들이 함께 심었던 나무는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뿌리째 뽑혀 사라졌다. 이듬해인 2001년 3월 하씨가 다시 두 번째 묘목을 공수해 와서 심었지만 잘 자라던 나무가 가위 테러를 당해 허리가 잘려나갔다. 간절한 염원 때문인지, 강한 생명력 때문인지 몇 달 만에 밑둥치에서 새싹이 돋았다. 하씨는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나무는 또 남은 둥치가 반으로 쪼개지고 껍질마저 벗겨진 상태로 발견됐다. 당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논쟁 첨예화 등 반일(反日) 분위기에서 일어난 일이 아닌가 짐작될 뿐이었다.
하정웅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2003년 3월 세 번째 묘목을 들여왔다. 이번엔 아무도 눈치챌 수 없는 비밀의 장소에 묘목을 심었다. 그 나무가 프로젝트 시작 14년째인 올해 처음 결실한 것이다. 그것도 딱 한 알을.
하씨는 왜 그토록 감나무 한 그루에 천착했을까. 그의 고난 어린 삶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는 일제 식민시대 도일(渡日)한 공사장 인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중학교 졸업 후 공사장에서 돌을 나를 운명이었으나 그의 총명함을 안타까워한 일본인 교사의 도움으로 현립(縣立) 아키타공고로 진학해 미술부 활동을 시작했다. 졸업 후 한국인이란 이유로 취업에 실패하자 도쿄로 가서 갖은 허드렛일을 하며 디자인스쿨을 다녔다. 그는 가전제품 대리점을 하며 제법 큰돈을 모았고, 이루지 못한 화가의 꿈을 작품을 모으는 것으로 대신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하씨는 현재까지 1만여점에 이르는 미술품과 자료를 조국에 기증했다. 우리는 그의 방대한 기증 미술품에 놀라지만 간과하는 것이 있다. 기증품 속에 담긴, '조센진'으로 살아야 했던 재일교포의 애환이다. 그가 조국의 미술관에 기증한 작품 중엔 피눈물로 물감을 이겨 붓끝으로 찍어낸 재일교포의 한(恨)이 올올이 서린 작품도 있다.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현해탄을 넘어 광주의 외진 비탈에 심어져 살아가는 감나무 한 그루의 운명도 재일교포처럼 경계인의 운명과 같다.
하씨는 피폭 나가사키 감나무를 '생명체'로 보고, 이 감나무에 굴곡진 역사 속에서 살아온 자신을 비롯한 재일한국인의 정체성을 부여한 것이다. 14년 수난 끝에 결실한 감나무에서 그는 그토록 간절히 소망했던 일본 사회 자이니치(在日)의 평등한 삶, 한·일 선린우호의 희망, 광주가 입은 상처의 치유를 보는 것이다. 국치(國恥) 115년, 광복 70년, 한·일 수교 50년인 내년을 앞두고 하정웅은 감나무에 '해원(解寃)'과 '치유'의 염원을 담고 평화·인권·생명·용서·화해를 통한 상생에의 간절한 희망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200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이와테(岩手)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시의 해안가 소나무 한 그루를 박제해 '기적의 부활'로 영구 보존하고 있다. 인간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자연과 생명의 숭고한 가치에 위안과 희망을 얻고 싶기 때문이다.
나무에는 국적도 경계선도 없다. 인간이 그 경계를 정했을 뿐이다. 이 감나무를 현해탄을 건너온 '왜놈나무'로 보느냐, 생명과 평화를 염원하는 '인류공영의 나무'로 보느냐에 따라 수년째 꽁꽁 얼어붙은 한·일 관계가 해빙(解氷)하는 희망의 봄을 맞을지, 오래도록 겨울을 지속할지가 좌우될 것이다. 선택은 우리들 몫으로 남아있다.
노치환 이수현의인문화재단설립위 사무총장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