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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문학은 삶을 파괴하는 모든 행동 반대"
노벨상 시상식 연회서 3분 30초 영어 연설
원고에 없는 "함께 폭력에 맞서요"로 마무리
스톡홀름=황지윤 기자
입력 2024.12.11. 20:30
업데이트 2024.12.11.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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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 연회에서 한강이 영어로 3분 30초간 연설했다. 그는 일인칭 시점으로 생각함으로써 또 다른 ‘나’들과 이어지는 언어의 힘에 대해 말했다. /뉴스1
10일(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 연회에서 한강이 영어로 3분 30초간 연설했다. 그는 일인칭 시점으로 생각함으로써 또 다른 ‘나’들과 이어지는 언어의 힘에 대해 말했다. /뉴스1
“문학은 필연적으로 삶을 파괴하는 모든 행동을 반대합니다. 저는 문학에 주어지는 이 상의 의미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여기서 함께, 폭력에 맞서면서요.”
10일 오후 10시 50분쯤(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 ‘블루홀’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 연회 막바지. 1300여 명의 시선이 집중됐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54)이 영어로 약 3분 30초 동안 연설했다.
노벨위원회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영어 원고와 실제 연설 마지막 부분이 약간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공개된 원고에는 ‘I would like to share the meaning of this award, which is for literature, with you — standing here together(저는 문학에 주어지는 이 상의 의미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여기 함께 서서요)’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그는 이렇게 연설을 마무리 지었다. “standing here in opposition to violence, together(여기서 함께, 폭력에 맞서면서요).” 그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폭력에 맞서는 것. 현재 한국 상황 등을 고려한 작가의 신중한 애드리브로 느껴졌다.
10일(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 '블루홀'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 연회 모습. 약 1300명이 참석했다. 스웨덴 국왕이 먼저 음식을 받은 뒤 8분 안에 전체 참석자들에게 음식을 서빙해야 하는 '불문율'이 있다. /뉴스1
10일(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 '블루홀'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 연회 모습. 약 1300명이 참석했다. 스웨덴 국왕이 먼저 음식을 받은 뒤 8분 안에 전체 참석자들에게 음식을 서빙해야 하는 '불문율'이 있다. /뉴스1
◇연회 연설 전문(번역)
폐하, 왕실 전하, 신사 숙녀 여러분.
여덟 살의 어느 날을 기억합니다. 오후의 주판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비가 너무 거세게 내려서 20여 명의 아이가 옹기종기 한 건물의 처마 밑으로 모였습니다. 길 건너편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었고, 그 건물의 처마에도 다른 작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마치 거울을 보는 듯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물기가 내 팔과 종아리를 적실 때, 문득 깨달았습니다. 나와 함께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이 사람들과 길 건너편의 사람들이 저마다 ‘나’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요. 이들 각각이 비를 보고 있었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요. 내 얼굴의 이 물기를 그들도 느꼈을 테지요. 너무나 많은 일인칭을 경험한 놀라운 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을 돌아보며 저는 읽고, 썼습니다. 저는 이 놀라운 순간을 다시 그리고 또다시 살았습니다. 언어의 실을 따라 타인의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가 타인의 내면을 마주했습니다. 내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질문들을 그 실에 맡겨 다른 ‘나’들로 보냈습니다.
어릴 적부터 저는 알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 고통받는 이유와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 이 질문들은 문학이 수천 년간 물어왔고,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계에 잠시 머무르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가장 어두운 밤,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묻습니다. 언어는 지구에 거주하는 인간과 모든 생명체를 일인칭 시점에서 상상해야 한다고 끈질기게 말합니다. 언어는 우리를 이어줍니다. 이러한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체온 같은 것을 지니게 됩니다. 마치 문학이 필연적으로 삶을 파괴하는 모든 행동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처럼요. 저는 문학에 주어지는 이 상의 의미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여기서 함께, 폭력에 맞서면서요. 감사합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이 10일(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 연회에서 웃고 있다. /뉴스1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이 10일(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 연회에서 웃고 있다. /뉴스1
◇4시간에 걸쳐 만찬과 공연 이어져
이날 연회 테이블에서 한강 오른쪽에는 안드레아스 노를렌 스웨덴 의회의장이 앉았다. 왼쪽에는 스웨덴 공주 마델레이네의 남편 크리스토퍼 오닐이 자리했다. 장장 네 시간에 걸쳐 3코스 만찬과 막간 공연이 이어졌다. 전채는 스웨덴 남부 외스테르예틀란드 지역의 염소 치즈에 비트·꿀·구운 호박씨를 곁들인 요리. 메인은 치킨 퀸넬(완자). 마지막엔 사과를 설탕에 졸여 만든 테린 위에 얇게 썬 사과와 아이스크림을 올린 디저트가 나왔다. 각 메뉴는 프랑스 샴페인, 이탈리아 바롤로 레드 와인, 사과로 만든 스웨덴 이사이더(일종의 아이스와인)와 함께 나왔다. 수상자 등 귀빈을 제외한 참석자들은 만찬 값으로 3600스웨덴크로나(약 47만원)를 냈다.
10일(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 연회에서 사과를 이용한 디저트가 테이블에 서빙됐다. 스웨덴 국민들은 매년 이 만찬 디저트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만찬 디저트는 그해 노벨 만찬이 열린 뒤 시중 레스토랑에서 팔린다. /연합뉴스
10일(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 연회에서 사과를 이용한 디저트가 테이블에 서빙됐다. 스웨덴 국민들은 매년 이 만찬 디저트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만찬 디저트는 그해 노벨 만찬이 열린 뒤 시중 레스토랑에서 팔린다. /연합뉴스
오후 11시 공식적인 연회가 끝나자 노벨상 수상자·왕족·스웨덴 정부 관계자 등 가운데 ‘VIP 테이블’에 앉은 귀빈들이 둘씩 짝을 지어 층계참을 따라 무도회장이 있는 2층 ‘골든홀’로 올라갔다. 한강은 춤은 추지 않고 골든홀 옆방에서 사람들의 축하 인사를 받으며 담소를 나눴다. 기자가 “축하드린다. 고생하셨다”고 하자 “감사해요”라고 답했다. 이 밖에 소감을 묻는 취재에는 응하지 않고 “내일 봬요”라며 웃었다. 11일(현지 시각) 스웨덴어판 출판사인 ‘나투르 오크 쿨투르’에서 한국 기자단과 간담회가 예정돼 있다.
몰려드는 인파에 작가는 자정을 넘겨서도 계속 연회장에 머무르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눴다.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올가 토카르추크를 비롯해 니나 에이뎀 나투르 오크 쿨투르 편집자, 로렁스 랄뤼요 RCW 문학 에이전트 등이 축하를 건넸다. ‘채식주의자’를 처음 영미권에 소개한 영국 작가 맥스 포터(당시 영국 출판사 ‘포토벨로’ 편집자)도 축하를 전했다. 맥스 포터에게 “당신이 한강을 처음 세계에 알리지 않았느냐”고 하자 웃으며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우리 모두가 한 팀이지(We’re all one team)!”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4/12/11/JYFPAF52I5BNLAPFUANWA2YA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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