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눅17:11-19 / 주님께 감사하는 생명(열명 중에 한 사람) / 한홍철목사 / 20081123
D53추수눅17가 #20081123 #추수감사주일 / 누가복음17:11-19 /주님께 감사하는 생명(열명 중에 한 사람)/명륜제일교회/한홍철목사
<누가복음17: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에게 충만히 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지금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동행하시며, 인도하시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처음에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자리잡은 곳을 향하여 말씀합니다.
창조 첫째날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말씀대로 빛이 생깁니다.
창조 둘째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늘이 생깁니다.
창조 셋째날 하나님의 말씀대로 땅과 바다와 식물이 생깁니다.
창조 넷째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와 달과 별들이 생깁니다.
창조 다섯째날 하나님의 말씀대로 물고기와 새가 생깁니다.
창조 여섯째날 하나님의 말씀대로 동물들이 생기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만듭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복줍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창조하신 온 누리를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아합니다.
창조 일곱째날 하나님의 안식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안식 속에 모든 피조물이 참된 평화와 기쁨을 맛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나라가 임하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집니다.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붇잡고 주 안에서 묵상하고 기도하며 순종할 때 창조의 역사, 치유의 역사,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며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소페르는 "피할수 없는 하나님“이라는 책에서 교도소와 수도원의차이가 무엇인지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는 교도소와 수도원의 근본적인 차이는 한 마디로 불평과 감사에 있다고 했습니다. 감옥에 투옥된 죄수들은 항상 모든 것을 불평으로 보내지만, 반면에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들은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을 감사로 보냅니다. 그러나 죄수가 감사하면 아무리 교도소라 할지라도 천국같은 수도원이 될수 있고, 수도사들이 감사를 중지하면 지옥같은 교도소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모두가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살기를 원합니다.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오늘은 우리가 추수 감사절로 지키는 날입니다. 이 추수감사절의 성서적 근거는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어다 거두어들인 다음 하나님 앞에 그 중에 제일 좋은 것을 가지고 와서 일주일 동안 축제를 벌이며 감사했던 수장절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키는 감사절의 직접적인 동기는 청교도들의 추수감사절에 두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영국의 종교개혁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개혁파들이 종교 개혁에 성공했다가 다시 천주교가 득세해서 뒤엎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신교도들이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 신교도들을 우리는 청교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청교도들은 그들의 좋은 집, 많은 재산 등 애써 이루어 놓은 기반을 포기하고 아메리카 대륙을 향해서 배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건너갔습니다. 이들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포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사를 지었고 가을에 추수한 다음 함께 모여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하면서 곡식을 모아 놓고 감사절기를 지켰습니다. 그러기까지 그들 가족 중에서 굶어 죽는 사람, 병들어 죽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런 중에서 이들이 근본적으로 감사했던 것은 신앙의 자유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곳에 가서도 신앙의 자유를 못 찾고 농사지어 풍성한 곡식만 쌓아둔 것이 감사할 일이었다면 고향 땅을 무엇하러 떠났겠습니까? 이들이 고향에선 못살았습니까? 고향에서도 그것보다 더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감사한 것은 마음놓고 예수 믿는 이 신앙의 자유야말로 가장 근본적으로 감사할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쌓아놓고 감사한 중에서도 불행한 조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남편이 죽은 사람, 혹은 아버지가 죽은 사람, 아들이 죽고 혹은 딸이 죽은 사람들이 많았고, 먹지 못해서 굶어 죽었고, 또 병이 들었어도 병원이 없어서 치료도 받아보지 못한 채 안타까워하는 부모의 눈앞에서 죽어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곡식을 쌓아놓고 보니 얼마나 가족 생각이 나겠습니까?
그런 불행하고 좋지 못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좋은 조건과 축복만을 생각하고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도 우리들 집안에 다 좋은 일들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좋지않은 일도 있고, 좋은 일도 있는데, 좋은 일만 생각하면서 감사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이런 의미로 지키는 그 청교도들의 감사절, 이것이 우리가 청교들의 후예들에게서 선교를 받고 우리도 지키게 된 것이 감사절의 유래입니다.
본문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열 사람의 문둥이가 예수님을 만났는데,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로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아홉 사람은 전혀 얼굴도 나타내지 않았는데, 그 중의 한 사람만이 돌아와서 감사함으로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뻐하고 좋아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집니다.
첫째, 아홉은 유대인이었고, 한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둘째, 아홉은 고침 받은 후 제 갈 곳으로 갔고, 한 사람은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셋째, 아홉은 침묵했고 한 사람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넷째, 아홉은 감사하지 않았고, 한 사람은 주님께 사례했습니다.
다섯째, 아홉은 믿음에 대한 칭찬이 없고, 한 사람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하는 칭찬과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은혜를 입었지만 감사할 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자에게 예수님은 육신의 구원뿐만 아니라 영적인 구원 즉 전인적인 구원을 안겨줍니다. 예수님은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자에게 가장 큰 축복, 구원의 복을 안겨줍니다.
어느 교회의 목사님 사모가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큰 충격과 함께 원망이 터져 나왔습니다. 자신이 중병에 걸린 것은 개척 교회 시절에 고생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남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히 남편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싹터 올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은 선배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목사님, 얼굴이 어둡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목사님은 형편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선배 목사님이 제안을 했습니다. “노트를 한 권 사다가 사모에게 주세요. 그 노트에 감사할 일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목사님은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들고 아내에게 갔습니다. 역시 사모님이 말했습니다. “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 사모가 한두 줄씩이나마 노트에 감사할 일을 써 내려간 것은 목사님이 방을 나서고 난 후에도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부터 적어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서 감사의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러자 점점 통증은 사라지고, 다리에는 웬일인지 힘이 생겼습니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영적인 일입니다. 하나님은 감사로 사는 사람들의 심령에 역사 하십니다.
그래서 William Law 는 "최대의 성자는 고행, 금욕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도 감사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루터도 "선한 사람은 있는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고, 악인은 없는 것을 생각하고 불평한다." 말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행복입니다. 반대로 불평이 많은 사람은 모든 것이 귀찮습니다. 그래서 불행입니다.
불평이 많은 사람은 수박을 먹어도 왜 이렇게 씨가 많으냐고 불평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수박을 먹으니 속이 다 시원해서 좋다고 감사하면서 맛있게 먹습니다. 불평이 많은 사람은 장미꽃을 봐도 꽃보다는 가시를 보고 불평하지만, 감사하는 사람은 장미꽃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사합니다.
멕시코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함께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온천이 솟고 그 옆에서는 얼음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올라 동네 여인들은 빨랫감을 가지고와 온천에서는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는 헹구어 집으로 가져가곤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관광객이 안내하던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찬물과 더운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참 좋겠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죠” 그러자 안내원은 “천만에요. 이 마을 사람들은 불평이 더 많습니다. 더운물과 찬물이 나오는 것은 좋은데 빨래 비누까지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이 많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더운물과 찬물이 솟아나는 샘물처럼 사람의 마음 역시 감사와 불평이 솟아나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감사하면 감사하는 일이 많아지고 불평하면 불평할 일이 점점 많아집니다. 돌아와 감사했던 사마리아 한사람처럼 감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삶으로 우리의 삶을 바꿔야 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소문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갑작스럽게 홍수가 났는데 강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건너갈 곳은 외나무다리뿐이었는데 외나무다리를 보니 꼭 끊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저 외나무다리를 무사히 건너게 하심으로 제 목숨을 살려만 주신다면 제 재산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 주셨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여라. 그래서 용기를 내고 외나무다리를 건너기 시작해서 다리의 절반쯤 왔습니다.
그런데 건너다보니 생각보다는 다리가 튼튼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정정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너무 경황이 없어서 실수로 저의 전 재산을 바친다고 했는데 취소하고 만일 무사히 건너서 목숨만 살려 주시면 저의 재산의 절반을 바치겠습니다."
그랬더니 음성이 들려 오기를 "그럼 그렇게 해라" 는 하나님의 응답이 왔습니다.
이제 어렵게 외나무다리의 4분의 3을 건너고 얼마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이 사람의 마음에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재산의 절반을 바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야." 하면서 그래서 하나님께 다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삼세판입니다. 한번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일 무사히 건너게 하심으로 제 목숨을 구해 주신다면 제 재산의 4분의 1은 반드시 바치겠습니다."
이 기도를 하자마자 외나무다리가 삐그덕 하더니 두 동강이가 나고 이 사람은 진흙이 흐르는 강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빠지면서 이 사람이 그랬답니다.
" 아이구 참, 하나님, 농담도 못합니까?"
우리는 우리의 필요에 따라 구합니다. 하지만 만일 우리의 필요가 채워지면 감사를 잊어버립니다. 혹시 기도가 막히십니까? 감사하십시오. 오늘 내가 살아있음을 감사하고 예수 믿게 된 것을 감사하고 아주 기본적이고 작은 일부터 감사하십시오.
칼 바르트 라는 유명한 신학자는 "믿는 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바로 감사의 있고 없음의 차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감사가 그쳤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아주 긴급한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마치 달리는 자동차에서 엔진오일이 떨어진 것과 같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엔진오일을 넣지 않고 계속해서 운전을 했을 때 발생할 문제는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온 자동차에 불이 붙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에서 감사가 그쳤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삶에 문제를 가져옵니다. 제 아무리 간절히 간구하고 기도해도 감사하지 않는 믿음은 빈깡통과 같습니다.
감사하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서 죽을병에서도 고침 받는 역사가 일어나고 아무리 부르짖어도 감사하는 삶이 아니면 믿음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진리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감사하느냐 불평하느냐?" 너무도 간단한 말씀입니다. 무슨 심오한 통찰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감사의 깊이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설교가 스펄천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별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별빛도 달빛도 햇빛도 필요없는 하나님의 영원한 빛으로 인도하신다"고 설교했습니다. 이처럼 감사는 믿음의 통로와 같아서 감사가 없이는 그 마음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탈무드에는 "가장 행복한 어떤 사람인가? 감사하는 사람이다" 라고 가르칩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갑니다" 여러분 모두가 감사함으로써 행복한 믿음생활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같이 함께 따라서 합시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2번)
주님께 감사를 잊고 사는 것은 마귀의 미혹에 넘어간 삶입니다. 주님께 감사할 때 마귀의 역사는 물러갑니다. 주님께 감사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다가옵니다.
비누 공장을 운영하던 한 중년 남성이 있었습니다. 그는 회사가 경영난을 겪을 때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일조는 철저히 드렸습니다. 한번은 직원이 비누 만드는 기계를 너무 오래 가동시키는 바람에 물에 둥둥 뜨는 '엉터리 비누'가 생산됐습니다. 직원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사장은 비누를 들고 묵상에 잠겼습니다. 그때 한가지 생각이 문뜩 떠올랐습니다. "목욕탕에서는 물에 뜨는 비누가 훨씬 좋다. 이 상품을 그대로 판매하자" 사장은 이 비누의 이름을 ‘아이보리(상아)’라고 지어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이 비누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그는 거부가 됐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할레이 프록터. 미국 신시내티에 있는 프록터 갬블 비누회사의 설립자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감사할 일이 생깁니다.
미국 보스턴 해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날마다 일정한 시간이면 머리가 하얀 백발노인 한 사람이 통에 가득 싱싱한 새우를 가지고 나와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에게 먹이는 것입니다. 갈매기들은 이 노인을 알아보고 으레 그 시간이 되면 해안에 모여서 노인이 주는 새우를 맛있게 받아먹습니다. 하지만 싱싱한 새우를 왜 갈매기들에게 매일 같이 먹이는지, 아무도 노인에게 물어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철없는 어린아이 하나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이 싱싱한 새우를 왜 매일같이 저 갈매기들에게 먹이는 거예요?" 노인은 어린아이에게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나는 2차 대전 때 미군 함정의 함장이었단다. 그런데 내가 탄 배가 일본군들이 쏜 어뢰에 맞아서 그만 격침되고 말았지. 많은 부하들이 죽고, 나와 몇몇 사람만이 구명보트를 타고 간신히 살아 남았는데, 햇빛은 뜨겁고 식량은 다 떨어져서 거기에 남은 사람들마저도 하나 둘씩 죽어가는 형편이었다. 나 역시 너무나 힘들어서 정신이 몽롱해졌지.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눈을 떠보니 어깨에 갈매기 한 마리가 올라앉아 있더구나. 쫓으려고 했지만 영 도망도 가지 않고, 좌우간 못 견딜 정도로 배가 고파서 그 갈매기를 잡아먹고 기운을 차려서 마침내 살아남았단다. 그래서 나는 갈매기를 볼 때마다 그때 갈매기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고 또 갈매기에게 감사한다. 내가 잡아먹은 그 갈매기를 다시 만날 수는 없지만 너무도 고마웠던 그 때의 기억으로 인해 이렇게 새우를 사다가 먹이고 있는 것이란다."
죽어가는 목숨이 갈매기로 인하여 건짐 받은 노인이 남은여생을 하나님과 갈매기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참 아름답습니다.
우리모두는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할 수 밖에 없었지만 예수님으로 인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남은 평생 아니 영원토록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모두에게 “주님께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의 말씀에 응답할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가능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바로 알고 고백하며 고백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하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사하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의롭게 세우시려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존귀하게 높이려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이기는 교회가 되도록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새 하늘과 새 땅의 삶으로 인도하려고 재림하실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바로 알고 믿을 때에 예수의 영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우리 모두가 될 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영,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주님께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생명의 영, 보혜사 성령님이시여! 지금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감사의 영으로 충만히 체워 주시옵소서. 범사에 주님께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삶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081123 생명사랑)
<설교요약>
누가복음17:11-19 /주님께 감사하는 생명(열명 중에 한 사람)/명륜제일교회/한홍철목사
소페르는 "피할수 없는 하나님“이라는 책에서 교도소와 수도원의차이가 무엇인지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는 교도소와 수도원의 근본적인 차이는 한 마디로 불평과 감사에 있다고 했습니다. 감옥에 투옥된 죄수들은 항상 모든 것을 불평으로 보내지만, 반면에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들은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을 감사로 보냅니다. 그러나 죄수가 감사하면 아무리 교도소라 할지라도 천국같은 수도원이 될수 있고, 수도사들이 감사를 중지하면 지옥같은 교도소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모두가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살기를 원합니다.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본문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열 사람의 문둥이가 예수님을 만났는데,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로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아홉 사람은 전혀 얼굴도 나타내지 않았는데, 그 중의 한 사람만이 돌아와서 감사함으로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뻐하고 좋아합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은혜를 입었지만 감사할 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자에게 예수님은 육신의 구원뿐만 아니라 영적인 구원 즉 전인적인 구원을 안겨줍니다. 예수님은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자에게 가장 큰 축복, 구원의 복을 안겨줍니다.
그래서 William Law 는 "최대의 성자는 고행, 금욕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도 감사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루터도 "선한 사람은 있는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고, 악인은 없는 것을 생각하고 불평한다." 말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행복입니다. 반대로 불평이 많은 사람은 모든 것이 귀찮습니다. 그래서 불행입니다. 불평이 많은 사람은 수박을 먹어도 왜 이렇게 씨가 많으냐고 불평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수박을 먹으니 속이 다 시원해서 좋다고 감사하면서 맛있게 먹습니다. 불평이 많은 사람은 장미꽃을 봐도 꽃보다는 가시를 보고 불평하지만, 감사하는 사람은 장미꽃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사합니다.
칼 바르트 라는 유명한 신학자는 "믿는 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바로 감사의 있고 없음의 차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위대한 설교가 스펄천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별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별빛도 달빛도 햇빛도 필요없는 하나님의 영원한 빛으로 인도하신다"고 설교했습니다. 이처럼 감사는 믿음의 통로와 같아서 감사가 없이는 그 마음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탈무드에는 "가장 행복한 어떤 사람인가? 감사하는 사람이다" 라고 가르칩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갑니다.” 주님께 감사를 잊고 사는 것은 마귀의 미혹에 넘어간 삶입니다. 주님께 감사할 때 마귀의 역사는 물러갑니다. 주님께 감사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다가옵니다.
우리모두는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할 수 밖에 없었지만 예수님으로 인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남은 평생 아니 영원토록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영,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주님께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81123 생명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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