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은 유치하게 싸우곤 한다. 꼬집고 물어뜯기도 하지만, 어느정도 영리한 애들은 자기가 갖고 있는 유리한 `자원`을 이용한다. 마음에 안드는 친구에게는 맛있는 것 안주거나 왕따를 시키는 식이다.
골목대장이 큰 몸집에 수준높은(?) 싸움 실력에, 돈까지 많다면,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서럽기까지 하다. 두둘겨 맞는 것은 둘째치고 이것저것 치사한 심부름을 해야할 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자장면집 아이가 있었다. 늘 사업에 실패하던 그 아이의 아버지가 자장면 프랜차이즈 사업을 했고,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원래 갖고 있던 요리 솜씨가 이제서야 발휘된 것이다. 동네에서 아이의 위세가 커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기존 골목대장인 햄버거집 아들만큼 살도 찌웠고, 군것질거리를 미끼삼아 어린 애들은 꼬붕삼아도 될 정도가 됐다.
예전과 다른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자장면집 아이에게는 눈엣가시가 하나 있었다. 바로 횟집 아들내미. 몸은 비루하게 마르고 왜소한데 햄버거집 아들의 오른팔에 엉겨붙어 2인자 노릇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동네에서는 돈많다고 유세도 꽤 떤다.
게다가 자장면집이 한창 가난할 때, 횟집 사장은 동네 재개발을 명목으로 온갖 행패를 부렸다. 자장면집 아들은 그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어느날 횟집 아들이 자장면집 아들의 유리구슬을 가져가더니 내놓지 않았다. 이유는 자기네 화단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란다.
자장면집 아들은 원래 그 땅이 자기네꺼였는데, 횟집에 뺐겼다고 생각했던 터라 울컥 성질을 냈다. 횟집 아들은 들은 척도 안했다. 최근들어 몸집은 불렸을지 몰라도 수준 낮은 가난뱅이 출신 졸부 양아치라고 무시했다.
자장면집은 직접 처들어가 생떼를 쓰는 것보다 치사하게 구는 전법을 쓰기로 한다. 바로 횟집에만 후춧가루를 팔지 않겠다고 한 것.
모든 음식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사이드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후춧가루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큰 비중은 아니지만 후추가 있어야 음식 맛이 올라가고 손님들이 만족하기 때문이다.
이 동네 후추 유통의 97%를 자장면집이 잡고 있었기 때문에, 횟집은 별수 없이 구슬을 내어준다. 자장면집에 보복할 게 있나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지만 소리없는 메아리일 뿐. 처음으로 횟집이 자장면집에 굴복한 것이다.
기세등등하던 횟집아들이 `치사한 전쟁`에서 망신을 당하자 전 동네 아이들이 주목했다. 넋놓고 있던 햄버거집 아들도 아차 싶었다. 자신도 햄버거 만들 때 쓰는 대부분의 후추를 자장면집에서 사고 있었던 터.
후추를 갖고 자장면집이 마음만 먹으면 햄버거집의 영업까지 정지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햄버거집 주인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프롤로그를 좀 길게 썼지만, 이것은 실제 있었던 분쟁을 우화적으로 쓴 것이다. 자장면집은 중국, 횟집은 일본, 햄버거집은 미국이다. 후추는 희토류다. 주재료는 아니지만 맛을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 요소다.
구슬사건은 2010년에 있었던 센카쿠 열도(조어도) 사건 분쟁을 비유한 것이다. 참고로 일본은 러시아, 한국, 중국과 영토 분쟁 중이다. 센카쿠 열도는 일본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중국은 불법점거라고 주장하는 곳이다.
여기에 중국 어선이 침범을 했고, 일본은 나포를 했다. 어선의 선장을 자국법에 따라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던 일본은 중국이 희토류 수출 중지를 선언하자 며칠 안돼 굴욕적으로 풀어준다.
자존심이라도 살릴겸 자국 순시선 수리비 1억여원을 중국에 요구했지만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일본으로서는 스타일 완전 구긴 사건이다.
세계 경제대국 2위의 일본을 단번에 무너뜨린 희토류는 뭘까? 희토류의 영문 이름은 rare earth다. 희귀한 흙 정도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름도 희토류라고 지은 것 같다.
좀더 명확히 뜻을 풀자면 희귀금속이 맞는 말이다. 자연상태에서는 보기힘든 금속류라는 뜻. 사실 희귀금속이란 말도 정확히 맞는 말이 아니다. 제련과 정련이 어려울 뿐이지 복합 화합물 형태로 지구상에 널려 있으니까.
이들 금속류는 열 몇개(17개)가 있는데 흔하지 않은 것들이라 이름도 어렵다. 그래서 이름은 생략하겠다.
이런 금속이 중요한 이유는 전자 제품에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밀한 기능이 요구되는 전자제품일수록 감초같은 희귀 금속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풍력, 조력같은 신재생에너지 산업에도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발전기에 쓰이는 자석류도 희토류에 속한 금속이 절대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
이들 희토류는 철, 알루미늄, 실리콘, 금과 같은 주재료는 아니지만, 주재료의 기능을 더욱 정밀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광섬유를 예를 들자면 희토류에 속한 금속 하나를 넣어주었더니 빛 손실률이 원래 손실의 2%까지 줄었다고 한다.
즉 첨단 산업의 감초재료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가전 왕국 일본은 두말할 나위 없었고. 중국이 희토류 공급을 끊으면 일본 밥줄이 끊기기 때문에 별 수 없이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등소평이 그랬다.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우리한테는 희토류가 있다"고. 그가 살아있던 시기가 90년대니까, 중국은 이미 그때부터 희토류의 전략적 가치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 전략이 고스란히 드러난 게 일본과의 영토 분쟁 때였고.
희토류의 최대 매장 국가는 중국이다. 전 세계 추정 매장량의 절반이 중국에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희토류가 있다. 고령토에서 희토류를 추출해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들이는 비용에 비해 나오는 값어치가 떨어져 개발을 하고 있지는 않다. 무엇보다 복합화합물 형태로 있는 희토류 금속을 추출해내기가 무지 어렵다. 그 와중에 발생하는 오염 문제는 왠만한 굴뚝산업 저리가라할만큼 심각하다.
자연상태에서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 원소들을 분리해야하기 때문에 엄청난 화학적 수단을 쓸 수 밖에 없다. 일례로 잘게 분쇄된 희토류 원석에서 원소들을 추출하는데 쓰는 황산 등의 유독 화학물질이 희토류 1톤 당 수천 톤 수만 톤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원소 중 일부는 방사성 동위원소로 방사선을 낸다. 이것들이 인체에 해를 끼치는 것은 당연지사.
희토류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과 오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것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전 세계에 중국밖에 없는 상황이라 중국이 전세계 희토류 공급량의 97%를 보이는 것이다. 물론 매장량도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80년대까지 희토류 생산은 미국이 제일 많았다. 헌데 `저렴한 인건비`, `환경비용을 따로 계산하지 않는 무지함`, `자국민의 건강보다는 돈이 우선`인 중국에 가격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
미국이 중국에 희토류 생산 주도권을 뺐긴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오염 문제에 있다. 희토류 광산 개발에서 나오는 오염물질로 비난 여론이 들끓자 생산을 멈춘 것이다. 가격 경쟁력도 안되는데 욕까지 먹을 필요가 없었다는 것.
중국은 가격을 낮춰 경쟁 국가들의 희토류 생산을 멈추게 하면서 독점체제를 갖춰나갔다. 자국민의 엄청난 희생을 볼모로 하고 말이다. 덕분에 광산(죄송... 이름을 다 잊어먹었네요) 주변의 주민들은 암, 백혈병, 기형아 출산의 폐해를 맛보고 있다.
게다가 수십년간 해왔던 희토류 개발로 엄청난 폐기물이 쌓였고, 환경 재앙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양쯔강 근처에 한 호수에는 희토류 개발 폐기물이 수천톤 쌓여있다고 한다. 호수 물이 넘쳐 양쯔강으로 흘러 들어가면 대규모 환경 재앙마저 초래할 수 있다.
앞으로 중국은 이런 자원을 무기삼아 전 세계에 감놔라 대추놔라하면서 자국의 입김을 강화시켜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원 확보의 야욕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에 일본과 미국이 대응책 마련을 위해 부심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베트남, 말레이시아는 이미 일본이 선점했고. 그나마 남은 키르기스탄에 힘을 내보려고 하는데, 워낙 경제적, 정치적으로 외진 나라라서 쉽지 않아 보인다.
에필로그 (책 내용과 상관없음. 희토류가 많이 쓰이는 신재생 에너지, 녹색산업에 대한 이면임)
현재 주목받고 있는 신재생에너지, 녹색성장 산업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필수적인 2차전지, 풍력발전기에 들어가는 자석 등은 모두 희토류를 필수적으로 써야한다.
이들은 겉보기에 정말 깨끗하고 친환경 적이다. 연기를 내뿜지도 않고 과도한 탄소배출도 없다. 그런데 석유와 석탄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친환경이 될 수 있을까?
LED조명이 주목을 받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친환경적이란 이유 때문에서다. 전기를 덜 쓰기 때문에 석유와 석탄의 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기대를 받았고. (사실 LED조명을 경제성 측면에서 봤을 때는 정말 낙제점이다. 전기 절전 효과도 기존 개량형 형광등과 비교했을 때 크게 나아진 게 없다. 오히려 값만 더 비싸다.)
하지만 LED조명을 만드는데 투입되는 재료는 기존 조명때보다 훨씬 많다. 형광등에 쓰이는 수은이 안들어가 친환경적이라고 하지만, LED조명의 폐기물도 만만치 않다.
전구만 교체해서 썼던 기존 조명과 달리 제품 전체를 갈아야 하기 때문에 쓰레기도 많이 늘었다.
신재생에너지, 녹색성장산업도 이와 같다는 것. 태양광, 풍력 발전을 위해 멀쩡한 산을 깎는 것은 눈에 드러난 예일 뿐이다.
그것들을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재료, 대표적으로 희토류는 추출부터 최악의 환경오염을 야기한다. 과연 이것들이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또 속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는 소비가 기반이 된 경제운영 체제다. 소비가 없으면 무너진다는 점. 그리고 이 소비를 키우기 위해 끝없이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팔아야 한다.
지금의 신재생에너지, 녹색산업은 겉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줄지 몰라도, `친환경`이라는 패러다임만 넣은 아류작일지 모른다는 점이다.
전기가 바람에 의해 `공해`없이 생산되도, 그 발전기를 만드는데 `공해`문제가 여전하다면, 그것이 진짜 기존 환경 파괴적 산업이 대안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산업으 더 큰 문제는 잠재된 환경파괴보다도, 이것들이 기존 화석연료의 자리를 대치할 수 있느냐는 것. 미국은 이제 2%고, 일본은 10년 있어야 20%라는데... 화석연료 채굴량은 줄고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지금의 신재생에너지, 녹색산업에 희망은 걸어도 큰 기대까지는 힘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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