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검은 백조'처럼 나타난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듯… 하지만 충격적으로
블랙 스완(The Black Swan)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차익종 옮김｜548쪽｜2만5000원
최성환 대한생명 경제연구원 상무 sungchoi@korealife.com
입력시간 : 2008.10.24 21:37
1987년 10월 19일 뉴욕증시는 다우지수가 508포인트(22.6%)나 폭락하는 '검은 월요일(Black Monday)'을 겪었다. 엄청난 손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월가에서 항의행진에 나섰다. 상당수는 'MBA 물러가라(Down with MBA)' 또는 '워튼 물러가라(Down with Wharton)'고 쓴 피켓을 손에 들고 있었다. MBA는 경영학석사를, 워튼은 당시 월가에 가장 많은 MBA를 배출한 펜실베이니아대의 경영대학원인 워튼스쿨을 뜻하는 것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월가에서 비슷한 구호가 재연되고 있다. 다른 점이라면 워튼이 하버드로 바뀐 정도이다. 금융위기가 한창 진행 중인 지금이야 누구를 비난하거나 경고하더라도 손가락질을 받거나 크게 주목 받지 않는다.
하지만 위기가 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월가에서 잔뼈가 굵은 투자전문가가 동료 또는 선후배들을 향해 비난과 경고의 직격탄을 날린다면 어떻게 될까?
저자는 이 책을 발간하면서 가진 한 강연에서 "앞으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파국이 월가를 덮칠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를 날렸다. 또 책에서는 "넥타이 차림의 신사들을 경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이 금융공학을 전공하고 월가에서 투자회사를 운영하는 금융전문가이면서 "월가의 금융전문가들이 숫자를 주물러서 사기를 친다"고 일격을 가했다.
이 책이 처음 발간된 작년 4월만 하더라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장기주택담보대출)'라는 말이 막 나오기 시작하던 때였다. 따라서 누구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지금과 같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뉴욕타임스는 비판적인 서평을 게재(저자는 이에 대해 반박문을 투고했다)했고, 미국 통계학회는 저자의 기고문 한 편에 반박 논문 세 편을 함께 실었다.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지만 미국 메이저리그의 거포 호세 칸세코가 메이저리그 선수 10명 중 8~9명이 스테로이드를 사용하고 있다고 폭로하는 책을 냈을 때와 비슷한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저자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경고가 맞아떨어졌다. 지난 9월 이후 최근까지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증시는 충격과 혼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검은 월요일을 뛰어넘는 '블랙 스완'이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를 '월가의 이단아'에서 '월가의 새로운 현자'로 만들어준 블랙 스완은 금융위기에 대한 설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블랙 스완은 '예측 불가능성, 극도의 충격, 예견의 소급적용'이라는 세 가지 속성을 가지고 종교의 발생부터 개인의 삶까지 우리가 접하고 있는 모든 영역에서 잠복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또한 블랙 스완은 전문가도 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갈수록 더 자주 출몰할 것이라면서 블랙 스완과 공존하면서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비책도 제시하고 있다.
>> '블랙 스완'이란
백조(白鳥)는 '하얀새'라는 뜻이다. 영어 'swan(스완)'에는 하얀색이라는 의미가 들어있지 않지만 미국인과 유럽인들도 'swan'하면 으레 하얀 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960년대 호주를 여행하던 유럽출신의 조류학자들이 색깔이 온통 검은 백조를 발견했다. 이후 '블랙 스완(black swan)'은 과거의 경험이나 상식 또는 기존지식의 범주를 크게 뛰어넘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저자는 어린 시절 고향인 레바논에서 학생소요로 투옥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당시 레바논의 내무장관이었던 그의 할아버지는 소요진압을 명령했고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총을 난사했다. 10년 넘게 내전을 치르면서도 레바논의 어른들은 "전쟁이 불과 며칠이면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사건들이 매일 일어나는데도 사람들은 그 사건들이 예상 밖의 사건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이후 월가에서 파생금융상품을 다루는 투자전문가로 일하면서 겪은 1987년의 '검은 월요일(Black Monday)'은 레바논 내전에 못지않게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사건이었다.
저자는 이 세 가지 사건으로부터 '블랙 스완'이라는 단어와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이를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에 적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