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학은 지금 ① 텐도 아라타 『애도하는 사람』 [중앙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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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4 00:10 입력 / 2010.05.04 00:10 수정
“사회로부터 상처 입은 사람들 내 작품 읽고 공감하는 게 아닐까”
텐도 아라타는 메이지대 연극학과를 졸업했다. 그런 이력 때문인지 연극의 ‘메소드 연기’와 비슷한, 소설속 등장인물에 몰입하는 방식으로 신작 『애도하는 사람』을 썼다. 아라타는 한국 영화도 좋아했다. ‘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콤비의 새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경계와 구분이 무너지는 ‘크로스 오버’ 현상은 문학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리얼리즘과 판타지의 결합, 고급도 통속도 아닌 중간문학 , 사실과 허구를 결합한 팩션 등 문학의 새로운 용어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형식과 미학과 관계없이 수준 높은 문학 작품은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대담한 서사구조로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한 우리 시대 외국 작가들을 시리즈로 만나본다.
한국 시장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지만 일본에서 소설가 텐도 아라타(50)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아라타 스스로 “도심 한복판에서는 드물지만 서점에서는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고 말할 정도다. 1996년 발표한 장편 『가족사냥』은 지금까지 일본 내에서 150만 부, 99년 작 장편 『영원의 아이』는 210만 부가 각각 팔렸다. 문고판을 포함한 수치다. 『영원의 아이』는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최근 국내 번역 출간된 2008년 나오키상 수상작 『애도하는 사람』(문학동네)은 일본에서 현재 30만 부 정도 나갔다고 한다.
아라타의 대중적인 인기는 가족 해체(『가족사냥』)·아동 학대(『영원의 아이』) 등 흡인력 있는 사회적 관심사를 연쇄살인·아동 정신병동 같은 극단적 사례를 통해 강렬하게 풀어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꼼꼼한 취재가 바탕이 된 실감나는 인물과 에피소드 설정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큼 생생하다.
특히 7년 만에 발표한 『애도하는 사람』은 러시아의 전설적인 연극인 스타니슬라브스키의 ‘메소드 연기’와 비슷한 방식에 따라 쓰인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시즈토는 5년째 살인·사망사고의 현장을 찾아 다니며 죽은 이를 기억하는 ‘애도 의례’를 치른다. 한쪽 무릎을 땅에 꿇은 채, 몇 해 전 인기를 끌었던 국내 개그맨 리마리오의 춤사위 같은 동작을 하면서다. 이를 위해 시즈토는 신문을 훑어 사망 사건을 찾는다. 소설은 닳을 대로 닳은 주간지 기자 고타로, 위암 말기인 시즈토의 어머니 준코, 남편을 살해한 여성 유키오 등 세 인물의 시점을 번갈아 교차시키며 애도 의례의 실체, 그 영향 등을 양파 껍질 벗기듯 찬찬히 보여준다.
재미 있는 것은 작가인 아라타 스스로가 ‘애도 노트’를 3년째 작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루에 한 명씩 사망자의 사연을 노트에 기록하고 기억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14일 도쿄의 문예춘추 출판사 사무실에서 아라타를 만났다. 그는 “고통 받는 사람들의 얘기를 쓰면서 방관자처럼 굴어서는 안될 것 같아서 노트 작성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메소드 연기란 배우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신체반응(눈물·경련 등)을 자연스럽게 끌어내기 위해 배역에 몰입하는 연기 방식이다. 아라타는 말하자면 소설 속 등장인물이 돼 자기 얘기를 쓰는 셈이다. 그는 “위암에 걸린 준코의 투병과정을 쓰면서 실제로 극심한 통증을 느낀 적도 있다”고 했다.
아라타는 180㎝가 넘는 키에 모델 같은 외모였다. 보기에 따라 나이보다 10년은 젊어 보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비결이 궁금하다. 당신 소설이 왜 그리 인기인가.
“독자들에게 감사할 일이다. 세계적으로 소설은 영상이나 음악에 비해 마이너 장르가 돼가고 있다.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아마 사회의 주류보다 약자 쪽일 것이다. 현재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의문을 품고 있거나, 사회로부터 상처 입은 사람들이 내 작품을 읽고 공감하는 게 아닐까.”
-『애도하는 사람』은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엉뚱한 인간의 얘기다. 그런 인물을 내세운 의도가 있다면.
“갈수록 사람 사회에서 관용이 없어지는 것 같다. 살인사건이 수시로 발생한다. 왜 그럴까, 의구심이 있다. 『애도하는 사람』은 9·11 테러가 계기가 됐다. 죽은 사람을 대하는 데도 경중이 있다고 느꼈다. 미국의 희생자는 대대적으로 보도되는데 보복전쟁으로 희생된 아프간 사람들의 죽음은 그렇지 않았다. 조선을 침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에서는 영웅이지만 한국에서는 다르게 볼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죽음이라도 차별 없이 애도하는 사람을 생각하게 됐다.”
-그렇더라도 지나치게 작위적인 것 같다. 현실성이 떨어진다.
“위선적이라고 생각하면 책장을 덮으면 된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있는 것은 소설 내용이 사람들의 죄의식, 껄끄러움 같은 걸 들춰서 그런 게 아닐까. 소설을 통해 독자들이 죽음을 차별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봤으면 좋겠다.”
-구상에서 집필까지 7년 걸렸다는데.
“인물마다 노트 한 권 분량의 이력서를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플롯을 짰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애도 노트 작성은 시즈토의 내면이 궁금해서 시작한 일이다. 소설 쓰면서 인물이 구체적 상황을 실감나게 표현해 내지 못하면 작가의 존재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매달린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자기파괴적인 과거의 낭만적 소설가상(像)을 좋아하지 않는다. 장편소설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생활에 기복이 있으면 쓸 수 없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생활 스타일도 일반인과 똑같이 유지하려고 한다. 낮에 일하고 밤에 쉰다. 독자들의 고민과 불안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라타는 “한국소설은 읽어 본 적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자기 글 쓰기 바빠 요시다 슈이치 작품도 못 읽는단다. “한국 독자가 좀 있다”고 하자 “독자적이며 뛰어난 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에 내 독자가 있다니 기쁘고 감사하다”고 했다. 진솔함이 느껴지는 작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