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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애, 美LPGA '올해의 선수상' 놓쳤지만… 상금왕 등 3관왕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 2003년 엄마와 사별후 깨달아
그 후 최고의 승부사로 변신
마지막 18번홀(파4) 칩샷이 홀컵을 살짝 비켜갔다. 순간 신지애(21)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사상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올해의 선수상'을 단 1점 차로 놓치는 순간이었다.
신지애는 "잘하지 못해 너무 아쉽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 골프 채널은 "축하한다"는 인사말로 신지애와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올해의 선수상'은 놓쳤어도 LPGA 데뷔 첫해 그가 이뤄낸 성과는 눈부시다. 신인상과 상금왕을 동시에 차지한 것은 1978년 낸시 로페스 이후 31년 만이다. 3승으로 다승 공동 선두까지 올랐다.
▲ 신지애의 아버지 신제섭(오른쪽)씨가 1990년 2월 대학원 졸업식때 어머니의 품에 안긴 신지애. 신지애는 어린 시절 꼬집어도 울지 않고 빙그레 웃을 정도로 웃음이 많았다고 한다./신지애 선수 가족 제공
24일(한국시각)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휴스터니안 골프장에서 열린 시즌 마지막 대회인 LPGA 투어챔피언십(총상금 150만달러) 최종 3라운드. 신지애는 합계 6언더파 210타로 공동 8위에 그쳐, 준우승한 멕시코의 로레나 오초아(11언더파 205타)에게 올해의 선수 자리를 뺏겼다.
그러나 28세의 오초아가 4년 연속 여제(女帝) 자리를 차지했다면, 21세의 신지애는 여자골프의 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영광의 순간 신지애가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은 엄마였다. 신지애가 중학교 졸업반이던 2003년 11월, 엄마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신제섭씨의 손을 잡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골프를 배운 철부지 소녀를 '승부사'로 만든 것은 어쩌면 엄마의 죽음이었는지 모른다. 신지애는 지난 21일 LPGA 올해의 신인상 시상식에서 영어 연설 도중 우리 말로 '엄마(Um-ma)'를 나직이 불렀다. "오늘은 그녀를 위한 날입니다. 엄마(Um-ma), 사랑하고 보고 싶어요. 저는 당신이 제 가슴속에서 영원히 함께하시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가난 속에 골프를 배운 신지애가 여관비를 아끼려고 대회 당일 새벽에 전남 영광의 집을 나서 대구의 골프장으로 떠날 때, 엄마는 새벽 2시부터 딸의 김밥을 말았다. 골프코스에서도 하염없이 기도만 하던 엄마였다.
지난해 신지애에게 승부에 강한 비결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엄마가 돌아가시는 것을 겪으며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엄마가 그의 곁을 떠난 지 4개월 만인 고교 1학년 때 신지애는 그동안 한 번도 못했던 전국대회 우승을 해냈다. 신지애는 "제가 우승하는 건 엄마가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곤 했다.
"지애 엄마는 따뜻하고 심성이 고왔어요. 다른 골프 학부모들이 지애 엄마를 '천사'라고 불렀어요. 지애가 웃는 모습이 꼭 그 사람을 닮았어요." 아버지 신씨는 딸이 상금왕에 오른 날 "지애가 고비 때마다 제 엄마가 힘을 주는 것 같다. 이제 우리 부녀의 꿈이 매듭을 맺은 것 같다"며 그동안 공개하기 꺼렸던 엄마와 가족사진을 본지에 제공했다.
조선일보 민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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