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스스로 자라는 거지, 누가 심는 게 아냐
똥친 막대기
김주영 그림소설｜강산 그림｜비채｜168쪽｜ 9500원
김태훈 기자 scoop87@chosun.com
입력시간 : 2008.09.27 08:45
김주영.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소설가 김주영(69)의 작품 목록 앞자리는 늘 《객주》와 《활빈도》, 《화척》 같은 장대한 분량의 대하소설들 차지였다. 그런 의미에서 원고지 분량 220장 내외인 이번 작품은 '장편의 작가' 김주영이 보여주는 새로운 모습이다. 그는 "컴퓨터와 워드프로세서의 영향 때문인지, 요즘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관계없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 문제의식을 이번 작품에 성찰적으로 투영했다는 얘기다. '동화'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의 소설은 있었지만 동화 형식의 소설을 선보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습니다', ~겠지요' 등 이전 소설에서는 볼 수 없던 경어체 문장이 확 눈에 들어온다. 그는 "미하엘 엔데의 《모모》처럼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작품 또는 아이가 낭송하면 어른이 듣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변신을 꿈꾸는가.
"분량이나 형식이 달라진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주제는 《객주》와 《천둥소리》, 《멸치》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달라지지 않은 것은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하찮은 삶들을 상상의 공간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자리로 불러내 기록하고 의미를 부여해온 김주영 문학의 오랜 관심이다.
소설은 백양나무 가지가 꺾여 세상을 떠돌다 하나의 나무로 뿌리내리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일종의 우화다. 나뭇가지는 농가 화장실에서 분뇨를 휘젓는 막대로 쓰이기도 하고, 개구리를 잡는 낚싯대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때려야 하는 회초리가 되는 원치 않는 경험도 한다. 홍수를 만나 휩쓸려가다 박힌 봇도랑 개흙에서 뿌리를 내리고 한 그루의 나무가 된다. 백양나무는 씨를 뿌리지 않고 그냥 가지를 꺾어 밭둑에 꽂으면 그 끝에서 뿌리가 자라난다. 누가 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라는 나무다. 우리 삶도 결국은 홀로 자라야 하는 나무의 삶이다.
이번 소설은 작가가 제목에 '똥'이 들어가는 작품을 쓰기로 구상한 10편 가운데 첫 작품이다. 두번째 소설은 《똥두간 생쥐의 기막힌 생애》다. 그는 "남편 없이 자식을 키워내는 암컷 생쥐의 슬픈 사연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세 번째 소설 제목은 정하지 않았지만, "장터 식당에 사는 똥파리가 겪는 삶의 애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