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지고 투박합니다. 패션 거장입니다. 미치면 보여요.
곳곳에 칼자국 입니다. 초밥 명인입니다. 상상력이 힘이죠.
휘고 울퉁불퉁합니다. 코트의 사령관입니다. 땀이 삶이에요.
성한 손가락이 두 개입니다. 산 호랑이입니다. 도전은 짜릿하죠.
희고 곱습니다. 미의 전령입니다. 자신을 가꾸세요.
부드럽고 섬세합니다. 생명지킴이 입니다. 물러서지 맙시다
지금도 한해 750벌을 만든다. 지치지 않는 '칠십 청년'
디자이너 앙드레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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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전화기 너머로 그의 음성이 들려온다. 느릿느릿하게 말을 늘이며 끝을 올리는 말투. 수많은 개그맨들이 흉내 내는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다.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된 것은 그의 말투만이 아니다. 하얀 옷에 짙은 눈 화장, 이름난 스타들이 참석하는 패션쇼,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된 드레스까지 모두 ‘앙드레 김 브랜드’를 대표하는 상품이 됐다. 그의 오늘을 있게 만든 손은 어떨까. 자신의 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화로 물어봤다. “손이요? 전 하루 종일 손을 쓰죠. 디자인할 때도, 옷을 만질 때도, 직접 손으로 다 하니깐요.”
가까이서 본 앙드레 김의 손은 의외로 투박하다. 농사꾼의 아들답게 크고 뼈마디도 굵다. 이 손이 재주덩이다. “1945년,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예쁜 옷을 입은 여인을 즐겨 그렸어요. 그림을 그리며 ‘나도 이렇게 옷을 만들고 싶다’ 상상했죠.” 구파발(당시 경기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그럼에도 남보다 그림을 잘 그렸다. 그의 그림은 종종 학예회에 전시되곤 했다.
고등학교(한영고)를 졸업한 뒤 국제복장학원에 들어가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다. 그의 손도 본격적으로 재능을 발휘했다. “학원에서 옷을 스케치하고 바느질, 패턴 작업까지 모두 내 손으로 했죠. 밤을 새워 일하는 날이 많았지만 옷을 만드는 것이 너무 행복했어요.” 62년 서울 소공동에 ‘앙드레김 의상실’을 차린 후 그는 45년 동안 쉴 새 없이 달려왔다.
일흔이 넘은 그는 지금도 정열적으로 일하는 현역이다. 요즘도 매년 평균 750벌의 옷을 직접 만든다. 한 해에 일곱 차례 패션쇼를 치르려면 아무리 시간을 쪼개도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그에겐 주말이 없다. 일주일 내내 청담동의 의상실로 출근한다. 점심시간도 고스란히 일에 반납한다. “점심 약속을 하면 적어도 두 시간은 써야 하잖아요.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웬만하면 밥만 먹고 30분 만에 들어와요. 일하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거든요.”
한 벌의 옷을 만들기 위해 그는 직접 디자인을 하고 3~5번에 걸친 가봉·수정 과정을 일일이 확인한다. 당연히 모두 그의 손을 거친다. 그래서일까 그의 손은 영락없이 ‘일하는 손’의 모양새다. 책상에서 연필만 굴리는 희고 매끄러운 손이 아니다. ‘디자이너의 손’에 신성한 땀내가 배어난다.
인터뷰 도중 탤런트 이재황씨가 패션쇼 의상을 가봉하기 위해 찾아왔다. 이씨가 10여 벌의 의상을 입어보는 동안 그는 모든 옷의 매무새를 일일이 확인한다. “자켓 길이, 조금 짧게 해주시고요. 네, 조금 더 올려주세요. 소매는 조금 더 조이시고요. 다리 라인이 보이도록 바지도 좀 줄여주세요. 부탁드려요.” 직원에게 작업 지시를 하는데도 그는 두 손을 앞으로 모은다. 취재 일행을 배웅할 때는 직원들과 함께 입구까지 나와 손 모아 90도로 인사한다.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는 말은 아예 입에 밴 것 같다. 그의 손은 ‘일하는 손’이며 ‘공손한 손’이다. 그는 말한다. “모든 것에 감사하게 생각해요. 가족·부모님에게 감사하고요. 옷을 만들어주시는 선생님들, 외교관 대사님들 모두 감사해요. 그런 마음이 손으로 표현된 것 같아요.”
최근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학력위조 파문에 대해 물었다. 앙드레 김은 고등학교 졸업에 전문 학원 이수가 경력의 전부다. 외국유학은 커녕 국내 대학 졸업장도 없다. 그럼에도 각종 문화예술 행사에 빠지지 않고 초청된다. “제가 막 디자이너가 됐을 때 기자님들이 ‘파리 유학 다녀오셨죠?’라고 물어봤어요. 그럼 제가 ‘한국에서 공부했어요’라고 말했죠. 일류대학 안 나와도 더욱 더 뛰어나게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제 믿음입니다.”
말하며, 그가 다시 가지런히 손을 모았다.
홍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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