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과 관용’으로 미국 분열 막아 … 위기 극복 리더십의 상징 [중앙일보] 링컨의 정치적 삶과 리더십
박보균 대기자, 현장서 추적하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간결하면서도 복합적이다. 그는 위기 극복 리더십의 상징이다. 갈라진 미국을 재통합시켰다. 그는 ‘위대한 해방자’다. 노예제 폐지로 얻은 별칭이다. 그는 초인(超人)의 순교자로 칭송받는다. 반면 신화 뒤 링컨의 인간적 진실은 다양하다. 그는 겸손한 권력을 보여 줬다. 그의 리더십은 통합과 관용의 전범이다. 반면 그의 권력 의지는 담대하고 냉혹했다. 야망의 샘이 끊임없이 솟았고 정치 행태는 속물적 면모도 지녔다.
링컨은 반전(反轉)과 곡절의 드라마다. 그의 대통령 취임(1861년 3월) 전에 미국은 쪼개졌다. 그리고 내전(Civil War·남북전쟁)이 시작됐다. 링컨은 4년의 전쟁을 승리로 마감했다. 국가 분열을 끝낸 역사적 성취를 이뤘다. 그의 삶에서 가장 감동적인 반전이다.
그의 초기 정치 역정은 영광보다 좌절을 겪었다. 그는 변방(켄터키주 하젠빌)의 통나무집에서 태어났고 자수성가한 변호사다. 내세울 만한 경력은 연방 하원의원(한 번) 정도다. 그의 정치적 고향은 스프링필드(일리노이주)다. 그 시절 의사당 건물이 사적지로 남아 있다. 2년 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 출정 장소다. 그곳에서 링컨은 ‘분열된 집’(house divided speech) 연설을 했다. 연방 상원 선거에 재도전하면서 “절반은 노예, 절반은 자유인으로 분열된 집은 지속될 수 없다”고 역설했다.
통합의 그 메시지는 그의 브랜드가 됐다. 그는 그것을 정치상품으로 내걸고 정적(스티븐 더글러스)과 노예제 찬반 논쟁을 벌였다. 정치적 감수성은 돋보였다. 그는 선거에 패배했지만 전국적 인물로 성장했다. 더 큰 정치적 도전에 나설 수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감수성과 불굴의 투지는 극적 반전을 만든다.
영광의 절정에서 국가 해체의 위기가 다가왔다. 그는 노예제를 반대했다. 하지만 급진적 폐지론자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노예제를 옹호한 남부는 링컨의 취임을 거부했다. 남부 11개 주가 미국 연방(북부 19개 주)을 탈퇴했다. 남부는 나라를 새로 세웠고 대통령(남부연합·제퍼슨 데이비스)도 뽑았다. 수도 워싱턴을 경계로 남북은 대립했다.
스프링필드에 대형 링컨 박물관이 있다. 2005년 디즈니랜드 스타일로 재개관했다. 링컨은 그때까지 최연소(52세·16대) 대통령이었다. 전시물에는 비판적 취임 기사를 실은 신문이 있다. “한때 장작을 쪼개더니 이제 나라를 쪼갤 것인가”-. 장작 패기는 가난한 유년기부터 그의 이미지다. 링컨은 검증되지 않은 불확실한 지도자로 출발했다.
링컨은 거대한 반전을 준비했다. 용기와 통찰력은 그의 지도력을 성숙시켰다. 공화당 내 소수파인 그의 선택은 탕평내각(Team of Rivals·역사학자 도리스 굿윈의 표현)이다. 대선 예비선거 경쟁자들(윌리엄 슈어드 국무, 새먼 체이스 재무장관)과 민주당 출신(에드윈 스탠턴 전쟁장관)을 기용했다. 오바마는 그것을 벤치마킹했다.
그 박물관은 링컨과 장관들을 밀랍인형으로 만들었다. 장관들은 링컨을 “촌놈, 멍청이”로 경멸했다. 실제 인물 같은 인형의 표정에는 오만과 고집이 은근히 드러난다. 링컨은 자부심 강한 장관들을 상호 견제와 균형으로 통솔했다. 포용의 용인술은 그런 재능과 인내, 낮은 자세를 갖춰야 성공한다. 슈어드는 나중에 “용기와 실천력을 가졌다”고 링컨을 재평가한다.
노예해방선언은 링컨의 숭고한 상징이다. 워싱기념상. [중앙포토]
노예해방선언(Emancipation Proclamation)은 링컨의 상징이다. 워싱턴의 링컨 공원에 기념 동상이 있다. 쇠사슬에 묶인 흑인 노예를 풀어 주는 링컨의 형상은 메시아 같다. 그러나 동상은 역사적 진실과 차이가 있다. 해방선언은 그 자체로 노예를 자유인으로 만들지 못했다.
해방령은 링컨의 승부수였다. 전쟁의 대의(大義)를 장악했다. 하지만 실천은 단계적이고 전략적이었다. 북부 내부의 갈등 때문이다. 북부에도 노예주(메릴랜드·미주리 등 4개 주)가 있었다. 국가 재통합이 우선 목표였다. 그는 “전쟁 목표는 노예제 폐지나 유지에 있지 않다. 연방 분열을 막는 데 있다”고 단언했다. 이 때문에 노예해방선언은 조건을 달았다. “1863년 1월 1일을 기해 연방에 반란한 주(州)의 노예는 자유의 몸이 된다”고 했다. 반란 주는 남부이며 선언의 효력은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선언으로 풀려난 노예는 없었다. 해방선언은 장엄한 인권선언문이 아니다. 계엄령 문서 같다. 노예제 퇴출은 전쟁 승리가 굳어지면서 이뤄졌다. 1865년 1월 의회는 수정헌법 13조(모든 지역의 노예 폐지)를 통과시켰다.
링컨은 언어가 가진 소통의 힘을 알았다. 언어의 마술사는 대중의 상상력과 열망을 장악한다. 게티즈버그 연설은 그의 유산이다. 연설은 272개의 짧은 단어(연설시간 3분)로 구성됐다. “국민의 정부 수호, 새로운 자유의 탄생” 부분은 민주주의 이념과 인권·평등을 명쾌하게 농축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지배 언어가 됐다.
링컨은 정치 유머의 달인이다. 유머의 대중 교감 효과를 터득했다. 지도자의 낙관적 행태는 대중에게 긍정적 에너지로 전염된다. “링컨의 위대함은 언어와 의지로 나라를 통합하고 세상을 바꾼 것”(오바마 평가)이다.
게티즈버그 전투의 사상자는 5만여 명이다. 펜실베이니아주 작은 마을인 그곳 국립묘지에 링컨 기념상이 있다. 전적지에는 1000여 개의 추모 동상, 비석이 있다. 그곳에 서 있으면 내전의 참상과 야만성을 실감한다. 남북전쟁 4년간(1861년 4월~1865년 5월) 전사자는 62만 명이다. 죽음의 무게는 20세기 큰 전쟁(제1, 2차 세계대전, 한국전, 베트남전)의 미군 전사자 전체를 합한 것보다 많다. 내전은 외적과의 싸움보다 참혹하다.
링컨은 남부와의 평화 협상을 거부했다. 그는 남부 정부를 반란 세력으로 규정했다. 그의 권력 의지는 그 원칙을 고수하게 했다. 그는 완벽한 전쟁 승리만이 정의로운 평화를 재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치열한 전쟁관은 전선에서 펼쳐진다. 초토화 작전이다. 링컨의 기준으론 한반도 평화는 위선적이다. 북한 핵무기와 기묘한 동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 반대자를 영장 없이 투옥했다. 그것은 대통령 권력 남용과 독재 논쟁을 일으켰다.
1864년 대통령 재선거 무렵 북군은 고전했다. 한나절에 수천 명씩 죽는 전투도 늘어났다. 야당 후보는 남부와의 협상을 내세웠다. 유권자들은 야당에 기울었다. 링컨 진영에는 낙선의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때 전선에서 승전보가 날아왔다. 북군은 남부 심장부 애틀랜타(조지아주)를 점령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처참한 장면대로 초토화시켰다. 전황이 좋아지면서 링컨은 재선에 성공했다. 일관성을 잃지 않으면 행운이 찾아온다. 원칙의 리더십이 갖고 있는 오묘한 동력이다.
“미국의 가장 위대한 드라마가 만들어진 곳.”-. 버지니아주 애포머톡스의 유적지 안내문이다. 그곳에서 전쟁이 끝났다. 1865년 4월 남군의 항복 장소다. 그러나 특별한 전적비나 기념비가 없다. 그런 간략한 안내문이 관광객을 맞는다. 그곳엔 승자의 환희, 패자의 절망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승패의 감정을 절제한 그 글귀는 링컨의 종전 정신이다.
종전 무렵 링컨은 남부 정부의 수도 리치먼드(버지니아주)를 방문했다. 그곳 전적지 공원에 링컨 동상이 있다. 동상 뒤쪽 돌담에 ‘나라의 상처를 꿰매자’(to bind up the nation’s wounds)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의 재선 취임 연설문 (“어느 누구에게도 원한을 품지 말고···정의의 이름으로 나라의 상처를 꿰매자”)에서 따왔다. 그의 냉철한 전쟁 철학은 이처럼 반전한다. 관용과 통합을 전쟁 후 시대정신으로 제시했다. 남부 항복 5일 뒤 링컨은 암살당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