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정병선의 視角(시각)] 이상훈 前국방장관·이상문 석좌교수·이상철 부회장… 3형제의 성공 스토리
정병선 bschung@chosun.com 기사100자평(22) 페이스북 트위터 요즘 싸이 공감 조선블로그 MSN 메신저스크랩메일인쇄입력 : 2011.10.01 03:12 / 수정 : 2011.10.02 09:02
"늘 미래를 생각해라"… 아버지는 설날 아침마다 형제들에게 '올해의 다짐' 당부
8남매 중 6명이 서울대를 나왔고, 1명은 육사를 나왔다. 그중 2명이 장관을 지냈다. 이들 중 삼형제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상훈(李相薰·78) 전 국방부 장관, 이상문(李相文·72) 네브래스카대 경영학 석좌교수, 이상철(李相哲·63) LG유플러스 부회장(전 정보통신부 장관)이다. 삼형제가 걸어온 인생은 각각 달랐지만 각자 자기 분야에서 최고 자리에 올랐다. 한 명은 국방, 한 명은 경영학, 한 명은 정보통신이다. 노(老)형제가 오랜만에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지난 17일 미국에 사는 이상문 교수가 중국 베이징대 특강 후 잠시 서울을 찾은 것이다.
"야, 너도 이제 칠십이야! 건강 조심해라."(이상훈)
"아이, 형도 참~. 형이나 걱정하세요."(이상문)
"이제 형님들 모두 신경 쓰셔야지요."(이상철)
형제 대화에서는 수시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들 바쁜 사람이지만 두터운 형제애를 과시했다.
▲ 이상훈 전 국방장관(가운데)과 이상문 교수(왼쪽), 이상철 전 정보통신부장관(현 LG유플러스 부회장) 등 형제들은 만날 때마다 서로를 격려하고 배려한다. 이들은 부모 기일(忌日)이면 어김없이 만나 형제애 를 나누고 생전 부모가 당부한 헌신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자고 다짐한다. 아름답고 멋진 형제들의 모습이다 /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이상훈 前국방장관
6·25 때 학도병 지원… 육사시험 봐 대장·장관… 50년간 안보위해 일해
지휘관으로 부임할 때마다 아버지가 연설문 토씨까지 고쳐줘
◆'보스' 이상훈
"내가 실질적인 가장이었어. 내가 집안의 기둥이었지."
이상훈 전 국방장관은 자신이 아직도 형제들의 리더라며 강한 보스 기질을 내보였다. 그는 보수 단체가 모인 한국애국단체총협의회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또 백선엽 장군과 안보 분야 대통령 자문 국민원로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내 나이에 나처럼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내 동기지만 내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제일 건강한 편입니다."
이 전 장관은 육사 11기에 대한 애착이 컸다. 1951년 진해에서 입교한 그는 육사가 4년제로 바뀐 첫 기수였다. 10기까지는 전쟁통에 제대로 과정을 거치지도 않은 채 임관했다고 한다. 큰형을 제외한 형제 5명이 서울대를 갔지만 그가 육사를 선택한 것은 "조국애 때문이었다"고 했다. "나라고 서울대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겠어요? 전쟁 때문에 혈기를 못 이기고 군을 택한 것이죠."
그는 서울에 진입한 인민군이 인민의용군을 모집하자 이를 피해 남쪽으로 갔다가 국방군에 자원 입대했다. "처음에는 학도병으로 가 있다가 육사 시험을 봤어요. 16세에 군대 갔으니 50여년을 객지 생활 한 셈입니다. 40년간 현역 생활을 하고 그 뒤에 장관과 재향군인회장을 했어요. 거의 50년을 국가 안보에 기여한 것이죠. 지금도 애국 단체 대표를 맡고 있으니 사실 평생을 바치는 거죠."
이 전 장관은 스스로 '집안에서 가장 출세한 사람'이라는 자긍심이 있었다. "결국 우리 형제 중 내가 제일 먼저 출세를 했죠. 대장(大將)을 했고 장관을 했으니 집안에 기둥이 된 거야. 아직도 내가 우리 집 기둥이라고. 게다가 지금도 내가 제일 건강하단 말이죠."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동생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그는 "이상문 박사가 미국에서 박사 하고 한국에 바로 왔다면 제일 먼저 장관이 됐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상문이는 미국과 구라파에서 석학으로 유명해요. 어찌 보면 나보다 더 출세를 한 것입니다. 상철이도 미국 NASA 통신 관계 기술자로 있다가 KT 사장을 했어요. 장관도 했지만. 상철이는 오명(吳明) 전 장관과 함께 한국의 정보통신 근대화의 주역입니다."
그가 육사에 들어간 뒤 부모님은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러나 그는 "전쟁 상황이라서 부모님 허락을 받을 처지가 아니었다"고 했다. "부모님의 우려는 내가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에 취임할 때마다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지휘관으로 부임할 때마다 연설문을 검토하고 글자 하나까지 다 고쳐주실 정도로 철저한 분이었습니다."
남매가 많다 보니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사람은 없었다. 막내인 이상철 전 장관이 가장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8남매 중 두 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한 명은 요양 중이다. 나머지 5명 가운데 이상문 박사와 홍일점 이순자씨가 미국에서 살고 있다. 예전처럼 형제가 자주 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도 상문이가 오면 형제끼리 골프를 합니다. 상철이가 핸디 10, 내가 18, 상문이가 15, 상융이가 20이에요. 아직도 우리는 내기 골프를 합니다. 양보가 없어요. 그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에요."
이상문 네브래스카大 석좌교수
6·25때 총알세례 두 번 받고도 무사 180달러 들고 美 유학가
37세에 석좌교수로 임명 경영학저서 68권… 박사 140명 배출
◆'공부벌레' 이상문
이상문 교수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세계적인 학회인 '범태평양 경영학회' 회장을 28년째 맡고 있다. 35개국 학자 4000여명으로 구성된 이 학회는 최근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경제 위기를 집중 분석하고 있다. 세계 경영학자들은 '상 리(Sang M. Lee)'라는 이름만 대도 금세 그의 명성을 알아차린다. 논문 300여편을 발표하고 각종 학회 기조연설을 700여 차례나 한 그는 미국과 유럽에서 존경받는 학자다.
올해 학회는 지난 5월 대전에서 열렸다. '조직행동론' 대가인 프레드 루탄스 네브래스카 석좌교수, 세계생산성학회(GMRG) 회장인 클래이 휘바크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 등 세계적인 경영학자들이 참석했다.
이 교수는 내년 중국 하이난도(海南島)에서 열리는 학회 때문에 어느 때보다 중국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미국 경영학회 최대 조직인 '의사결정학회(DCI)' 회장을 역임했다. 동양인으로는 처음이었다. "DCI는 경영학 개척자인 크리스 아지리스(Argyris)를 포함한 세계 경영학 분야에서 가장 저명한 사람들로 구성된 학회입니다. 43세에 미국 경영학회 의사결정 분야를 총괄하는 DCI 회장이 된 것은 큰 영광이었지요."
68권에 달하는 그의 경영학 저서는 경영학도들의 필수 교과서에 해당한다. 그는 '다중목표 프로그램' 창안자로도 유명하다. 기업체가 이윤 창출과 사회 봉사를 모두 충족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면서 그의 인생도 바뀌었다. 그의 프로필은 세계 유명 인명록 100여곳에 등재돼 있다.
"제가 박사를 140명 넘게 배출했습니다. 한국 학생은 60여명, 나머지는 미국 학생입니다. 이성렬 한국IBM 글로벌비즈니스서비스 대표, 서강대 노부호 교수, 강금식 전 성균관대 교수가 모두 제 제자입니다. 보통 교수들이 박사를 10~15명 배출한다고 하는데 140명을 가르쳤으니 대단한 것이지요. 사실 제 유명세 때문이기는 해요(웃음)."
그가 미국 갤럽 고문을 맡고 있는 것 역시 제자인 제임스 클립튼(Clifton) 갤럽 회장이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달라"며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는 네브래스카 공직자 중 최고 연봉을 기록하기도 했다. 네브래스카 주지사나 대학 총장보다 많은 연봉을 받았다. 그는 "벌써 20년도 지난 얘기"라고 했지만 그 기록은 유명하다.
"미국 대학에서는 교수 스카우트가 훌륭한 교수들을 붙잡아 두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만든 자리가 석좌교수인데 저는 네브래스카대에서 '유니버시티 에미넌트 스칼라(University Eminent Scholar)'라는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석좌 중의 석좌라고나 할까요?" 그는 1982년부터 30년간 이사회 선정 특별교수의 지위를 갖고 있다.
이 교수가 미국 생활을 시작한 건 1961년 서울대를 졸업한 뒤 마이애미대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시작할 때였다. "당시에 유학을 가려면 신발 두 켤레가 닳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발품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유학 당시 제 수중에는 겨우 180달러밖에 없었습니다. 뉴욕 맨해튼의 한 백화점에서 매니저로 2년간 일했고, 그릇 닦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1969년 조지아대에서 박사 학위를 딴 뒤 교수로 활동을 시작했다. 네브래스카대 학과장 겸 석좌교수로 임명된 것은 1976년, 그의 나이 37세였다.
이 교수는 한국에서 후학을 양성하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지난 1월 우송대 명예총장직을 수락한 것도 이런 이유다. 총장에게 새로운 혁신 프로그램을 주고 세계 각국의 유명 경영학자들로 자문위원을 구성할 계획이다. 그는 "융통성이 없기 때문에 서울대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했다.
"서울대는 학자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할 만한 여건이 안 됩니다. 아이디어를 제안해도 의사결정까지 가는 데 3~4년이 걸립니다. 세상도 급변하고 경영 환경도 급변하고 있습니다. 급변하는 환경을 따라가려면 속도가 중요합니다. 내가 원하는 속도를 지원할 만한 대학을 선택했습니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한국IT 1세대… 정통부 장관 지내 초고속 인터넷 와이브로 도입 주도
나눔·봉사 강조했던 유지 받들어 부모님 살던 집 복지재단에 귀속시켜
◆'IT 1세대' 이상철
"상훈 형은 깡패였고 상문 형은 범생(모범생)이였습니다. 아버지는 셋째인 상훈 형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고 다섯째인 상문 형은 좋아했어요. 상문 형은 공부도 잘했고 교회도 다녔고, 유학 가서 박사까지 했으니…." 8남매의 막내 이상철 부회장이 두 형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상훈 형은 천생 군인이었습니다. 경기중 2학년 때 근처 중학교에 찾아가 '첫째 가다'를 찾아내 결투를 했지요." '가다'는 일본말로 주먹잡이를 칭하는 말이었다. "그때 태권도 3단이었던 상훈 형은 유명한 싸움꾼이었어요. 그런 상훈 형이 싸움을 하면 상문 형은 항상 신발을 들고 다녔지요. 스케이트화의 날을 떼낸 신발이었는데 그걸 신고 싸우는 모습은 정말 대단했어요.(폭소)"
대가족의 삶을 뒤바꾼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이 부회장 나이는 고작 두 살이었다. 그는 훗날 어머니로부터 당시 상황을 전해 들었다. "서울 성북동 집에 어느 날 사람들이 빨간 완장을 차고 왔습니다. 선친은 당시 교육부 관료로, 지금으로 치면 서울시교육청의 과장이나 국장이었죠. 체포 대상 1순위였던 아버지가 먼저 피란을 떠나, 완장 찬 이들이 아버지를 못 찾자 아이들을 징집하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형들을 뒷문으로 피신시켰대요. 결국 부산으로 피란을 가면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됐습니다."
이상문 교수가 말을 덧붙였다. "6·25전쟁 때 열한 살이었어요. 피란길에 나섰다가 어머니 손을 놓쳤는데 인민군 탱크가 돌진하는 사이로 멀리 어머니가 보였습니다. 엄마를 향해서 뛰는 나를 향해 인민군이 총을 마구 쏘았습니다. 두 살짜리 상철이는 배가 고파 보채고, 나도 물로 배를 채웠지요. 인민군이 장악한 성북초등학교 창고에 건빵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갔는데 인민군 둘이 장기를 두고 있더군요. 그 틈을 타서 건빵 자루를 들고 도망쳤습니다. 그때도 인민군은 총을 쏴댔습니다. 그 건빵 자루를 엄마한테 주면서 '엄마 아기 먹여'라고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두 차례나 총탄 세례를 받고 살아난 목숨이니, 세상을 위해 평생 봉사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당연하죠."
이 부회장은 한국 IT의 1세대다.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듀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국방부 관련 일을 하다가 시민권을 포기하고 귀국, 1982년 한국 국방과학연구소에 근무하면서 군 통신기술 혁신을 주도했다. 당시 직책은 실장이었지만 "군내 통신 혁신을 위해서는 무기 중개상을 배제해야 한다"며 장관과 담판을 지은 일화는 유명하다. 결국 그는 군 통신망 사업인 '스파이더 시스템'을 개발했다. 정보통신부 장관(2002~2003) 재임 시 초고속 인터넷 와이브로와 DMB 사업을 도입한 주역이기도 하다.
▲ 1979년 이상훈 전 장관의 사단장 재임 때 찍은 가족사진. 앞쪽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상혁, 이 창우(아버지), 방덕순(어머니), 상훈, 상철, 상진, 상문, 상융, 순자 / 이상철 LG 유플러스 부회장 제공 ◆부모님과 형제들
"선친(이창우·2001년 작고)께서는 평생 교육자셨습니다. 문교부 장학관, 서울 사대부국 교장, 경성고 교장을 역임하셨지요. 아들 7형제 딸 하나를 낳아 여섯 명은 서울대를 보내고 한 명은 육사에 진학시켰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생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당하지 못한다. 타고난 사람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일을 즐기는 사람이 성공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평생 일을 열심히 즐기면서 하게 된 이유입니다." 이상문 교수의 회고다.
이상철 부회장이 어머니에 대해 말했다. "경성사범을 나와 교사로 일하시던 어머니는 형제가 많아서 늘 힘들어하셨습니다. 어느 해 겨울, 화로에서 숯불이 튀어 상융 형이 크게 다치자 어머니는 퇴직하고 아이들 뒷바라지만 하셨어요."
아버지가 출타했다 오시면 형제들은 모두 일어나서 일렬로 인사를 했다. 엄한 가장 밑에서 형제들이 의지할 곳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무조건 자식들을 감싸주었다. 공부하라는 말은 한 번도 안 했지만, 자식들이 시험 공부를 할 때는 먼저 주무신 적이 없었다. 문틈으로 본 어머니는 항상 기도를 하고 계셨다. 형제들의 부모는 신심이 깊은 기독교인이었다. 아버지는 퇴직 후 고향인 충북 청원에 교회를 세웠다.
아버지는 매년 설날 세배가 끝나면 종이에 '올해의 다짐'을 쓰며 당부했다. 인용문은 공자에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까지 다양했다. 아버지가 인용했던 클린턴의 연설문은 '늘 미래에 대해 생각하라(Never stop thinking tomorrow)'는 것이었다. 그렇게 교육을 받고 자란 남매 중 첫째와 넷째는 각각 사고와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형제들은 둘째 상혁이 경복고·서울법대를 진학한 것을 시작으로, 상훈(경기고·육사), 상진(경기고·서울대 토목공학과), 상문(경기고·서울대 경영학과), 상융(경기고·서울대 성악과), 순자(이화여고·서울대 피아노학과), 상철(경기고·서울대 전기공학과)이 줄줄이 명문고와 명문대를 졸업했다. 이상훈 전 장관은 "유일한 딸 순자는 집안의 축복이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교육자셨던 아버지는 학자가 된 상문 형을 가장 좋아했지만, 미국 여자와 국제결혼했을 때 딱 한 번 속상해하셨다"고 했다. 이 박사가 외국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얘기를 꺼내자 아버지는 아예 등을 돌렸다.
이들 형제는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라는 부모님의 유지를 받들고 있다. 이 부회장 부부는 부모님이 살았던 서울 정릉 집을 개·보수해 복지재단 '우리누리'에 귀속시켰다. 이 집에서 장애인들과 가정 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이 소질을 계발하고 있다. 나머지 형제는 아버지 고향 충북 청원에 장학재단을 만들어 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삼형제는 "부모님이 가르치신 것을 모두 실천하려면 아직도 멀었다"며 겸손한 미소를 지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