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다 국정 보고받은 미(美)대통령
●미국의 낭독 문화
도서관·서점·학교 등에서 저자와 토론회 매주 가져
능숙한 자기표현·즉석연설도 독서 문화와 관련있어
이영준·하버드대학 강사
◆교회, 학교, 서점, 도서관에서 매주 열리는 행사
독서라면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아니라 조용한 공간에서 묵독을 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던 필자가 미국에 와서 발견한 낭독 문화는 신기한 일이었다. 한국에서도 시 낭독회는 더러 있지만, 소설가가 자신의 소설을 대중 앞에서 읽는 장면은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문학작품은 물론 학술적인 책까지도 저자가 자신의 책을 읽고 청중과 토론하는 행사는 지역 도서관이나 중소 서점은 물론이고 학교나 교회 같은 곳에서 매주 열리고 있다.
미국의 초등학교에서 유명인사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은 신기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음은 물론이다.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화염을 내뿜고 있을 때 대통령 부시는 플로리다의 어느 초등학교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내 친구 염소'란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로라 부시 여사는 초등학교 학생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책을 읽어주는 낭독회를 자주 개최해 좋은 반응을 얻었고, 딸과 함께 도서전에 참가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부인 로라(오른쪽)와 딸 제나가 지난해 9월 27일 워싱턴에서 열린 전미(全美)도 서 축제에서 책을 읽어주고 있다. 로라 부시는 초등학생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낭독회를 자주 여는 것으 로 유명하다. AP
◆대통령 부부가 앞장서서 낭독회 주도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저자가 직접 방문해서 자신의 책 일부를 읽고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연례 행사의 하나다. 이런 행사는 학생들에게 강렬한 교육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유명한 책의 저자와 직접 대화를 나누는 자신이나 학급 친구의 모습에서 순식간에 자아가 커지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학생들은 세상의 주인이 되어 간다.
반드시 대도시가 아니더라도 지방 소도시의 서점이나 도서관도 내내 조용하기 만한 곳이 아니다. 서점들에선 거의 매주 책 낭독 행사가 있다. 서점이나 도서관의 한쪽에 마련된 공간에서 저자는 30분가량 자신의 책의 어느 부분을 읽는다. 많게는 몇 십명, 적을 때는 열명 남짓의 청중들이 모인 이런 행사에서 청중들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주저하지 않고 질문하고 토론한다. 신간을 펴낸 유명 작가들이 오는 경우도 있지만 테마를 정해서 '신의 존재' 같은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그런 주제로 책을 쓴 저자를 초대해서 발췌 낭독과 토론을 하기도 한다. 이런 소규모의 낭독회가 의외로 수준이 높은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은퇴한 교사나 교수들이 곧잘 참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청중들 대부분이 오랜 독서가들이기 때문이다. 흔히 정해진 시간을 넘기곤 하는 이런 열띤 토론은 미국 문화의 알려지지 않은 속내를 잘 보여준다.
◆시골에서 대도시까지, 수준 높은 토론 곁들여
케이블 방송인 C-SPAN BOOK 채널은 하루 종일 책을 읽고 토론하는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텔레비전의 상업화에 반기를 들고 설립된 C-SPAN은 책 채널 외에도 역사 채널, 의회 채널을 하루 종일 방송하고 있다. 책 채널의 주요 내용은 조그만 시골 서점에서부터 대도시 도서관에 이르기까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저자와의 대화 행사를 녹화해서 방송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공영 라디오 방송인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NPR)가 지식인들 사이에선 TV보다 더 인기 있는 방송이라는 사실도 특기할 만하다. 그 라디오 방송이 책을 낭독하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을 자주 내보내고 있음은 물론이다.
◆메릴 스트립 같은 유명배우도, 계관시인들도…
미국의 낭독 문화의 절정은 아마도 시(詩)의 달 4월일 것이다. 메릴 스트립 같은 배우들이 애송시를 읽는 행사가 전국에 방송되고 지역 도서관들은 연거푸 시 낭독 행사를 연다. 미국의 계관 시인은 의회도서관이 임명하는데 계관시인으로서 최소한의 공식적 의무는 단 두 가지, 의회도서관이 주관하는 시 낭독회에서 자신의 시를 읽는 일과 문학강연을 일년에 한 번씩 하면 된다. 물론 지방 도서관이나 대학 초청으로 시 낭독회를 하기도 한다.
미국의 이러한 낭독 문화는 책의 세계를 관념의 세계로 버려두지 않고 생활의 한가운데로 데려와 공유하고 실천하는 미국 정신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미국인들이 자기 표현에 주저함이 없고 즉석 연설에서도 능숙한 것, 그리고 학생들이 교실에서 유창한 언변으로 토론하는 능력이 있는 것도 이러한 낭독 문화와 관련이 있음은 물론이다.
※다음회는 프랑스의 낭독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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