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육체의 박물관|경향신문|2007-05-18
▲욕망하는 몸…루돌프 셴다|뿌리와이파리
“오스트리아 여자들은 풍만한 가슴을 갖고자 한다. 그래서 보름달이 비치는 밤이면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창가에 선다. 그리고 보름달을 향해 마법의 주문을 중얼거린다.”
요즘 이른바 ‘미드’(미국 드라마)가 인기다. ‘미드’의 원조는 개인적으로는 ‘섹스 & 시티’라는 생각이다. 도회적인 성적 상상력이 감성과 인간관계의 사슬 속에 비교적 잘 구현됐다.
이 책 ‘욕망하는 몸’에 등장하는 오스트리아 여자들의 일화에는 구체적인 시점이 제시되지 않았다. 현대 오스트리아의 풍경은 아닐 것 같다. 덜 현대적이고, 주술적이며, 훨씬 더 원초적 욕망에 충실한 이 일화는 그러나 오스트리아가 아닌 지금 뉴욕, ‘섹스 & 시티’ 속으로 넣어버리면 잘 어울린다. 몸의 욕망은 물신화한 현대성에서 더 큰 성장의 양분을 얻기 때문이다.
‘욕망하는 몸’은 ‘인간의 육체에 관한 100가지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인체 사진처럼 시각으로 즉각 수용되는 강렬한 텍스트가 아니라, 교양의 산책로를 느릿하게 걸을 때 얻게 되는 커피향의 만족감 같은 것이다.
백혈구가 세균과 싸우는 장면, 수정을 향해 맹목으로 달려가는 정자들의 역영 등 확대한 인체사진은 보는 이에게 충격을 준다. 그 아름다움과 정교함에 경외심까지 느끼게 마련이다.
같은 몸이지만, 이야기로 전하는 인체는 사진에 비해 거리감을 확보할 수 있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 피부와 머리카락, 머리와 목, 눈과 귀, 입과 코, 심장과 신장, 체액과 힘, 가슴과 배, 성기와 성, 팔과 다리, 손과 발의 10개 장으로 구성됐다.
육체의 문화사이자 육체를 다루는 방법의 문화사이다. 흥미로운 이야기,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무시무시한 사건, 유쾌하고 기이한 일화를 가득 모았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인체를 탐험하면서 각 부위에 대한 기본적인 의학지식을 소개하지만 그 이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건강서적의 범위를 벗어난다. 문화사라는 규정대로 인문서이다. 성경, 전설, 연대기, 동화, 시, 소설, 희곡, 신문 및 잡지 기사, 유행가 등 다양한 인용을 통해 몸에 관한 여러 시각과 해석을 내보인다.
한 대목을 살펴보자. 목은 머리와 몸통의 가장 중요한 송유관이다. 즉 혈관, 척추 안과 밖의 대단히 중요한 신경다발과 인대다발, 기관과 식도 등을 연결시키는 통로이다. 남자들 목의 앞부분 목젖은 선악과를 따먹고 채 못 넘기고 남은 것이라고 한다. 당연히 여자에게는 없다.
목덜미를 치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예를 들어 1618년 베링겐 근처 마을에서 헬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자기 나무를 몰래 잘라 가려던 가난한 농부를 붙잡았다. 헬은 징벌로 그의 뒷목을 나뭇가지로 때렸다. 집에 돌아간 농부는 밤부터 맞은 부위에 통증을 느꼈고 머리가 아팠다. 맞은 지 이레째 그는 결국 숨졌다. 헬은 나중에 나뭇가지를 함부로 휘두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처럼 의학과 서지학적인 지식을 적당하게 버무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게 이 책의 기본적인 서술방식이다. 출처가 하도 많아 저절로 저자가 애를 많이 썼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몸에 관한 박물적인 지식을 통해 저자가 제시하려는 전언이 무엇인지는 개개 독자가 판단할 일이다. 인체사진처럼, 그 박물적인 지식만으로도 일단은 교양의 경계를 획기적으로 넓힐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박계수 옮김. 2만8000원
〈안치용기자 ahn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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