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원 기자 blindletter@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기사100자평(0)입력 : 2012.05.22 16:37
▨위견전｜정해왕 글｜박보미 그림｜시공주니어｜9500원
때는 신라시대. 김개인이란 사내가 누렁이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그는 개를 몹시 아꼈다. 주인의 마음을 알았는지 개도 주인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한 김개인이 집으로 돌아가던 중 아무도 없는 풀밭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누렁이는 주인을 깨워보려고 짖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순간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불길이 일었다. 불길은 마른 풀밭을 태우며 김개인과 누렁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누렁이는 주인의 옷을 마구 흔들어댔다. 주인을 끌고 가보려고도 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누렁이는 갑자기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곤 근처 개울물에 뛰어들었다. 누렁이는 물에 흠뻑 젖은 몸으로 주인 곁에 돌아와 뒹굴었다. 그러기를 수백 번. 잠시 후 정신을 차린 김개인이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의 풀이 시커멓게 타서 재로 변해 있었다. 자신의 주변만 물이 젖어 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김개인은 곁에 엎드려 있는 누렁이를 발견하곤 흔들어 깨웠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불길을 헤치며 뛰어다니다 숨을 거둔 것이다. 김개인은 눈물을 흘리며 누렁이를 묻었다. 그리고 무덤 앞에 자신이 들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두었다. 얼마 뒤 지팡이에서 싹이 돋기 시작하더니 점점 자라 느티나무가 됐다. 사람들은 그 나무를 ‘개 오(獒)’ 자에 ‘나무 수’(樹) 자를 더해 오수라 불렀다. 마을의 이름도 ‘오수리’가 됐다.
▲ (위부터) 하치: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10년간 기다렸다. / 토고와 발토:눈보라를 해치고 치료제를 전달해서 도시를 구했다. / 누렁이:불길에서 주인을 구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 보비:14년간 주인의 무덤을 지켰다’. / 시공주니어 제공위대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위인전(偉人傳)’이라 부르듯 ‘위견전(偉犬傳)’은 위대한 개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14년간 주인의 무덤을 지킨 영국 에든버러의 ‘보비’, 강추위와 눈보라를 헤치고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치료제를 전달한 미국 알래스카의 ‘토고’와 ‘발토’,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기차역에서 10년간 기다린 일본 도쿄의 ‘하치’ 등 책 속엔 모두 여덟 마리의 ‘위견’이 등장한다. 사람보다 더 사람을 사랑했던, 때론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쳤던 견공들의 이야기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한다.
책에 실린 위견들의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오수개의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훗날 사람들은 비석을 만들었는데, 전라도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에 가면 그 비석이 여전히 남아 있다. 눈보라를 뚫고 도시를 구한 발토는 이후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에 출연하며 인기를 끌었다. 시부야역 광장에 세워진 하치 동상은 도쿄 사람들의 유명한 약속 장소가 됐다.
각 위견들의 품종 정보를 담은 코너도 유용하다. 각 품종의 원산지와 크기, 성격 등 꼭 필요한 정보가 귀여운 그림과 함께 소개된다. 삭막한 세상에서 성장해가는 어린이들에게 사랑과 희생, 신뢰와 우정의 가치를 일깨우는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