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치마를 들추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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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5.19 19:19 Url 복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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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처녀치마’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2004년 10월쯤 이 블로그에 ‘노무현 대통령은 처녀치마를 보았을까?’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권여선이 소설집 ‘처녀치마(2004년 이룸 펴냄)’를 비슷한 시기에 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권여선은 '사랑을 믿다'로 2008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유명작가입니다. 그런데 최근에야 도서관에 간 김에 이 책을 대출받아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표제작 ‘처녀치마’는 주인공 여성이 휴가를 내 1박2일 동안 장항선 근처에 있는 고향에 다녀오는 이야기였습니다. 부모 위패를 모신 사찰에 다녀오고, 칙칙한 분위기에서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나 술 한잔 하고 귀경하는 이야기였습니다. 평생 불성실했던 아버지와 산 어머니, 두번 이혼경력이 있는 남자를 만나는 주인공을 교차시키면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었습니다.
<2005년 봄 북한산에서 본 처녀치마>
내 관심은 제목인 처녀치마가 작품 속에 어떻게 나타나는지였습니다. 그런데 처녀치마에 대한 언급은 작품 속에 딱 두번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처녀치마가 나오는 부분을 인용해 보면,
“(고향) 산사의 마당에서 나는 선숙이 한 소쿠리 뜯어온 처녀치마를 가지고 소꿉을 살았다. 흰꽃은 오목한 돌멩이에 소담스레 담아 밥을 삼고 붉은 꽃은 쿵쿵 찧어 양념을 만들어 바람든 처녀 치마 폭처럼 넓은 입사귀에 발라 김치를 담갔다.”
“어제 아침 그의 몸에 심어둔 꽃씨에서는 어떤 꽃이 필까. 기적처럼 네 몸에서 연두빛 실타래 같은 처녀치마의 입사귀가 벌어질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처녀치마는 소설 속에서 그냥 소도구로 쓰인 정도였습니다. 처녀치마가 작품의 기본 이미지를 보여주거나 소설 전개에 중요한 소재로 쓰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책 마지막에 문학평론가 이수현이 쓴 해설도 처녀치마라는 꽃에는 아무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소설을 다 읽고 왜 처녀치마라는 제목을 달았는지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저도 시골 출신이지만 처녀치마라는 꽃은 보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나중에 꽃에 관심을 가진 후에 책에서 처음 보았는데 이름이 특이해 관심이 갔고, 실물을 처음 본 것도 수목원에서, 그것도 꽃대는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처녀치마는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꽃이기도 합니다. 책에서 본 꽃을 야생 상태로 발견하는 감동이 얼마나 아찔한지를 제대로 알려준 꽃이기 때문입니다.
야생의 처녀치마는 2005년 봄 북한산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북한산에 처녀치마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전해 봄에도 등산갈 때 일삼아 찾아보았지만 쉽게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2005년 4월 낙엽이 수북히 쌓인 틈으로 연보라색으로 특이하게 생긴 꽃이 올라오는 것을 포착하는 기쁨을 맛본 것입니다. 특히 책에서 본 사진과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깜짝 놀랐습니다. 처녀치마는 통꽃들이 모인 모양도 치마 같고, 잎도 로제트형으로 퍼져 치마 모양입니다.
한번 처녀치마가 보이자 그 주변에 처녀치마가 지천으로 널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보이지 않다가 한번 눈에 띄면 주변에 그 꽃이 널려 있는 것을 본 적이 많습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날아온 꽃씨를 남자 국밥에 넣은 다음 ‘그의 몸에 심어둔 꽃씨’라며 ‘처녀치마의 입사귀가 벌어질까”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처녀치마 꽃씨는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다니지는 않습니다. 처녀치마는 꽃대가 10㎝ 안팎일때 수정한 다음 특이하게도 꽃대를 50㎝까지 높여 꽃씨를 퍼트립니다. 원주 오크밸리 뒷산에서 60㎝ 이상 꽃대를 높인 처녀치마를 본 적도 있습니다. 높은 곳이 종자를 멀리 퍼트리는데 좀 더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처녀치마 꽃씨가 아무리 멀리 가도 도심에 있는 식당 국밥 속으로까지 튀어갈 정도는 아닐 것입니다. 소설 속 내용은 그냥 문학적인 비유로 받아들여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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