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멜로 ‘M’ 이명세 감독… “영화란，이야기 흐름 아닌 이미지·감정 흐름”
[국민일보 2007-10-23 17:35]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이명세 감독(50)의 시나리오란. '빛이 들어온다. 빛이 스며든다. 빛이 머물고 간 자리에 먼지 몇 개가 떠다닌다. 커피 잔에 김이 피어 오르고 그 위로 어떤 여인의 얼굴이 지나간다. 그 옆에 한 남자가 서있다.' 이미지의 연속이다. 그는 영화가 이야기의 흐름이 아니라 이미지와 감정의 흐름이라고 믿는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빨가면 사과-사과는 맛있어….' 이야기가 중요하다면 원숭이 엉덩이는 왜 빨간가에 초점을 맞춰 '불에 데어서? 누가 꼬집어서?' 이런 식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빨갛다는 이미지는 사과로 연결된다. "그렇게 이미지와 느낌으로 가다보면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가 된다. 널리 보급되진 않았지만 이것이 이명세식 시나리오기법이다."
영화 'M'은 이 시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라 불리는 이명세 감독 영화의 결정판이다. 참신하고 독특하며 장면마다 아름답다. 하나하나 공들인 화면과 소리를 따라 가다보면 무엇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고, 시간과 공간의 구별조차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주연배우 강동원 이연희마저 영화 속 잘 쓰여진 장식처럼 보일 정도다. 미스터리와 멜로가 섞인 영화 'M'은 약혼녀(공효진)와 결혼을 앞둔 소설가 민우(강동원)가 첫사랑 미미(이연희)를 찾아 헤매는 꿈.
지난 21일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감독은 "호기심이 없어진다는 것은 내가 죽었다는 뜻"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호기심이 많아지고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며 "'푸른꽃'이라는 시에 '인간이 되는 것이 예술이다'는 구절이 있다. 어릴 적엔 그럴듯해서 떠들고 다녔는데 어느날 문득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게됐다"고 말했다.
감독은 "사람에 대한 관찰, 존중, 예의 그리고 진짜 사랑을 안다면 영화를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영화가 무슨 메시지를 주어야 하거나, 어떤 감동을 이끌어 내야한다는 말을 싫어한다. 다만 자신의 영화가 관객들이 어떤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되길 바랄 뿐이다. "누구나 각자의 추억이 있고, 잣대가 있다. 내 영화가 관객들에게 기억으로 들어가는 열쇠는 될 수 있지만 내가 대신 열어줄 수는 없다. 어느 장면에서 관객이 어떻게 소통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장면에 공을 들인다."
이번엔 첫사랑이다. "첫사랑이란 인간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원형이다. 누구나 한번쯤 거쳐가는 열정, 그리고 어느샌가 사라져가는 감정들, 유치한 것같지만 그 유치함 속에 사람들이 가져야할 것들이 다 있다."
빛과 소리의 마술사인 그의 특기는 이 영화에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녹색 일식집, 빨간 지붕 카페앞 눈부신 거리, 허름한 루팡바 골목, 첫사랑의 추억이 담긴 이발관 앞 하늘의 하얀 뭉게구름. 전화벨, 똑딱거리는 시침, 선풍기의 윙윙거리는 소리, 과장된 음성녹음기….
그는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빛나는 어둠, 빛을 잉태하고 있는 어둠"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겐 음악도 단순한 영화 음악이 아니라 감정을 전달하는 대사의 한 부분이다.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관객들이 민우가 꾸는 악몽과 혼돈을 똑같이 느끼면서 빛나는 첫사랑의 기억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그것이 이 영화의 컨셉트다." 10대같은 말랑말랑한 감성을 지닌 쉰살의 감독은 영화 'M'의 감상 포인트를 이렇게 전했다. 25일 개봉. 15세가.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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