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두루미에 ‘미친’ 사나이
헌신적 연구·보호활동으로 총리 표창받은 윤순영씨
김포=최형석 기자 cogito@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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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조류보호협회 윤순영(54) 이사장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아침 7시부터 늦은 오후까지 경기도 김포시 홍도평야를 지킨다. 천연기념물 203호 재두루미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는 ‘재두루미에 미친’ 사람이다. 들판에서 재두루미를 발견하면 끼니도 거른 채 그곳을 지키며 사진도 찍고 밀렵꾼도 쫓고 모이도 준다. 그는 “재두루미가 봄에 시베리아로 날아가면 허전함에 열병을 앓는다”고 했다.
윤 이사장은 이렇게 들판을 지키며 필름에 고스란히 담은 재두루미의 생태 기록을 토대로 논문을 작성, 지난달 24일 한국조류학회지에 발표했다. 고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그가 제1저자였고, 환경정책 박사가 제2저자였다. 지난 10월엔 천연기념물 보호에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도 받았다.
그는 17년간 재두루미만 따라다니다가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300평 정원 딸린 2층 양옥집도 날렸다. 지금 그가 가진 건 5층 건물의 옥탑방 하나뿐이다.
▲ ‘재두루미 사나이’로 불리는 윤순영 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이 경기도 김포시 홍도평야에서 카메라를 잡고 포즈를 취했다. /김건수 객원기자 kimkahns@chosun.com“한때 김포시 축협 상무대리까지 올라갔었습니다. 사진작가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뉴스에서 재두루미가 사라져버렸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문득 ‘내가 찾아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김포·강화 일대를 2년간 뒤진 끝에 1992년 홍도평야에서 재두루미 7마리를 발견했다. “그때 기분은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재두루미들을 정성껏 돌봤고, 재두루미 숫자는 120마리까지 늘었다.
윤씨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재두루미를 쫓아다니는 걸까. “고고한 품격이 있는 새예요. 쟤들은 넓은 평원에 있으면서도 있는 듯 없는 듯합니다. 번잡하지 않지요.”
문득 이 사람, 재두루미를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진 건 없어도 몸과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 보였다. 그는 재두루미는 찾았지만 아내는 잃었다. 거덜난 집안과 재두루미에 빠진 남편을 견디지 못해 아내가 떠나간 것. 이후 생계를 위해 사진 스튜디오를 잠시 운영했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그는 후원금·강연비 등으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그는 김포신도시 계획에 관여, 김포시 운양동 일대 60만㎡(18만 평)를 ‘새들을 위한 땅’으로 보존하도록 했다. 건교부 환경영향평가 조류조사가 엉터리인 점을 지적해 이뤄낸 것이다. 그는 이 땅에 세계최고 야생조류공원을 만드는 게 꿈이다. 그는 또 조류공원과는 별도로 아파트 숲에 포위돼 점점 줄어드는 홍도평야를 재두루미들의 보금자리로 계속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재두루미를 보러 매년 60만 명이 방문하는 일본 소도시 이즈미처럼 홍도평야를 재두루미 명소로 만들고 싶다”며 “16만㎡(5만 평)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입력 : 2007.12.03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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