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 정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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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100자평(1) 크게 작게요즘싸이 공감조선블로그MSN 메신저입력 : 2012.01.31 22:14
선우 정 산업부 차장 전북 군산에 '이성당'이란 빵집이 있다. 호남 제일의 단팥빵을 만든다는 입소문에 짬뽕집 '복성루'와 함께 명소로 자리 잡았다. 한 달 전 엄동설한에 1시간 40분 동안 줄을 서 복성루 짬뽕을 겨우 먹고 이성당 단팥빵으로 매운 입을 달래며 서울로 돌아왔는데, 도로요금과 기름 값이 음식값의 두 배가 넘었다. 서울 특급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이 더 경제적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이런 멍청한 짓을 한다. '맛의 지존(至尊)'을 찾아간다고 하지만, 모든 맛집이 서울에 있는 이 시대에 맛 기행이란 바보 같은 행동인지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가는 것일까?
이성당은 9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곳이다. 주인은 몇번 바뀌었지만, 빵은 그대로 이어졌다고 한다. '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대가(大家)를 이룰 수 있는 수행(修行) 시간을 1만 시간이라고 했다. 하루 3시간씩 10년을 노력하면 보통 사람도 천재 반열에 오를 수 있다니, 하루 15시간씩 90년 동안 운영된 빵집은 어느 정도일까? 90년 동안 빵에 투영된 공력(功力)의 깊이에 공감할 수 있다면, 우리가 먼 길을 가는 것은 맛이 아니라 결국 시간의 향기를 사려는 것인지 모른다.
재작년까지 거주하던 일본 도쿄 오기쿠보의 역전(驛前)에는 '리스도르 미쓰'라는 프랑스식 동네 빵집이 있었다. 예순 가까운 주인이 "발효촉진제를 절대 사용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완고하게 지켜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촉진제를 쓰면 몇 시간 만에 끝날 발효를 열흘 동안 기다린다. 주인이 10년 동안 오페라를 배워 제빵실에서 매일 부르니 빵 반죽의 숨결에 균형이 잡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빵집은 불행을 당해 절망에 빠진 사람을 데려와 제빵의 비밀을 전수하고 '노렌와케(분점을 내는 것)'를 허락하는데, 빵 만드는 의지는 살려는 의지와 통한다는 주인의 믿음 때문이라고 한다.
과장이 섞였을 수 있지만, "빵의 재료는 땀과 눈물과 의지"라는 이 빵집 주인의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한국에 돌아와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를 보면서 팔봉 선생의 '봉빵'이 어디에선가 실제로 구워진다면, 그곳은 도쿄 오기쿠보의 빵집 화덕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베이커리 주변에는 빵의 향기보다 사람의 향기가 더 맛있게 떠돌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도 사람과 시간의 향기가 나는 동네 빵집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우리가 아직 찾는 노력을 덜 기울이고, 우리가 이야기를 끌어내는 노력을 덜 했기 때문에 적게 보이는 것일지 모른다.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팔봉 선생이 탁구에게 주문한 세 가지 빵을 기억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 그리고 마지막 과제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요즘 논란이 되는 재벌 빵집도 팔봉의 주문에 따라 '공존(共存)의 레시피'를 개발했다면 결과가 달랐을 수 있다. 절제와 겸손을 앞세웠다면 빵을 둘러싼 음식문화에 큰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화려한 빵, 잘 팔리는 빵만 추구하다 보니 결국 '세상을 불행하게 만든 빵'을 구워낸 것은 아닐까.
사실 그들이 '빵의 재료는 땀과 눈물과 의지'란 것을 체험했다면, 그들이 인생과 집념을 빵에 쏟아붓고 매일 빵집의 새벽 문을 열었다면, 대통령 한마디에 그렇게 줄줄이 내던지듯 빵집을 포기하지 못했을 것이다. 빵은 역시 빵에 모든 것을 건 '빵쟁이'의 몫으로 남아야 어울리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