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책읽기] 인류의 구원자는 … 지옥불도 이겨낸 미생물 [중앙일보]
프랑스
파트릭 포르테르파리 쉬드 11대학의 진화 생물학 교수이자 프랑스 대학 학사원 회원이며, 파스퇴르 연구소 미생물학부 부장이다. 파스퇴르 연구소와 오르세 유전학 및 미생물학 연구소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극한 미생물에서 유전자의 분자 생물학’ 연구팀의 책임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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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껍질로 둘러싸인 게를 끓는 물에 집어 넣으면 맛있게 삶아진다. 하지만 게는 죽는다. 끓는 물이 발에 쏟아지면 우리는 화상을 입고,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또 단테의 실락원에서도 저주받은 영혼은 용광로 같은 지옥에서 고통 받는다. 우리 상식에 열과 생명은 이처럼 서로 대립관계에 있는 듯하다. 그런데 뜨거운 열을 너무 좋아해서 섭씨 80~130도에서만 활발하게 활동하고, 70도 이하에서는 얼어 붙어버리는 생명체가 있다면 믿어지는가? 이런 가혹한 조건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의 공통점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단세포 ‘미생물’이란 점이다. 따라서 ‘고온성 미생물’이라 불린다.
1897년 미국의 식물학자 브래들리 데이비드가 옐로스톤 공원의 온천 지역에서 섭씨 85에도 살아가는 ‘식물’을 찾아냈지만 불과 30년 전만해도 대부분의 과학자가 이런 지옥의 미생물의 존재조차 몰랐다. 그러나 1990년부터 격년으로 이런 미생물을 다루는 국제 학술회의가 개최되고 수백 명의 연구자가 참석할 정도로 각광받는 학술 분야가 됐다.
이 생명체가 요즘 들어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 방향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 중 둘은 인류의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나머지 하나는 아주 실질적인 이유다.
첫째는 생명의 기원이다. 진화론적 입장에서 생명체가 처음 나타났을 때의 지구는 낙원보다 지옥에 가까웠다. 따라서 가혹한 조건에서도 살아가는 미생물의 비밀을 풀면 지구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알아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요컨대 다른 생명체는 잠시도 버티지 못하는 조건에서도 고온성 미생물이 어떻게 느긋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알아낸다면 온난화로 갈수록 더 뜨거워지는 지구에서도 인간이 어떤 형태로든 살아남을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둘째는 한층 희망적이고 바람직하다. 생태학적 입장에서 전통적인 화학을 녹색 화학으로 대체해 가는 데도 지옥의 미생물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파스퇴르가 발견한 저온살균법에서 보듯이 미생물은 80도 안팎에서 죽는다. 달리 말하면 단백질이 파괴된다. 생명공학자들은 이처럼 보통 단백질이 파괴되는 환경에서도 고온성 미생물의 단백질은 파괴되지 않는 점을 활용해서 유전자의 대량 복제가 가능하리라 기대한다. 이런 기대가 결코 비현실적인 꿈만은 아니다. 실제로 지옥의 미생물에서 단백질을 분리해낸 덕분에 생물학과 의학은 지난 20년 동안 혁명적인 발전을 이루어냈다.
셋째는 경제적 이유다. 고온성 미생물에서 유전자 복제와 관련된 효소를 추출하는 방법의 특허는 수년 전부터 매년 수억 달러를 벌어들인다. 요컨대 고온성 미생물은 콩고의 다이아몬드에 버금가는 노다지인 셈이다. 고온성 미생물에 대한 연구가 일부 선진국에서 각광받는 이유가 충분히 짐작되는 부분이다.
책의 저자 파트릭 포르테르(Patrick Forterre)는 20여 년 전부터 고온성 미생물을 연구해왔다. 과학자답게 위의 세 가지 이유 중에서 경제적 이득이란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복잡한 과학적 공식을 철저히 배제하면서 고온성 미생물의 존재가 과학계에 등장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설명하고, 생명의 기원과도 결부시켜 자연과학책인 듯하면서도 인문학적 냄새를 물씬 풍기는 책이다. 한 마디로 자연과학의 미시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