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고통받는 환자가 스스로 원할 경우 의사는 그 환자의 죽음을 도와줄 수 있는가. 이른바 ‘의사의 도움에 의한 자살(doctor-assisted suicide·안락사)’의 합헌성(合憲性) 여부를 놓고 미 대법원이 5일부터 공개 심리에 들어갔다. 존 로버츠(Roberts·사진) 신임 대법원장은 미국 내 최대 사회 쟁점 중 하나인 이 문제를 취임 첫 과제로 맞았다.
미 대법원이 합헌성을 결정할 대상은 오리건주가 8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존엄사법(尊嚴死法·the Death with Dignity Act)으로, 지금까지 하급 법원에서는 합헌으로 판정됐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의사가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해 죽음을 돕는 것은 위헌(違憲)이라며 대법원에 제소했다. 반면 이미 이 법으로 실제 208명의 환자가 안락사한 오리건주는 연방정부가 주(州) 차원의 의료행위에 관여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맞선다.
이 판결에는 생명의 존엄성 문제뿐만 아니라 연방·주정부 간의 권한관계, 정치·종교적 입장 등 복잡한 쟁점들이 얽혀 있다. 또 오리건주의 안락사법이 합헌으로 판정날 경우 다른 주에서도 비슷한 법률이 제정되는 등 파장이 전국적으로 이어질 수 있어 미국 여론은 이번 판결에 주목한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날 첫 심리에서 오리건주만 예외를 인정해줄 수 없다는 우려를 표명하면서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그는 “만일 한 주에서 의사들이 환자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모르핀을 투여할 수 있게 하거나 보디 빌딩을 위해 스테로이드 처방을 허용한다면 연방 법률의 일관성이 무너질 것이고 법 집행이 불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법원 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해오다 퇴임을 선언한 샌드라 데이 오코너(O’Connor) 대법관은 오리건주법 찬성 쪽으로 기울었다. 이 경우 원고인 부시 행정부측은 패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최종 판결은 오코너의 후임이자 보수파인 매리엇 마이어스(Miers) 지명자가 취임한 이후로 연기될 것이라고 미 언론들은 전망했다.
